2015.07.01.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평생토록 주님께 완전한 마음(왕상 15: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상 15장입니다. 열왕기상 15장 14절 말씀입니다.
산당들은 제거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의 마음이 평생토록 주께 대해 완전하였으며
저는 오늘 “평생토록 주님께 완전한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평생토록 주님께 완전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었습니다(행 13:22). 그리고 그 이후에 있던 왕들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였지만, 나중에는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 역시 주님과 멀리 있었고, 르호보암의 왕국을 찢어다가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다스리게 된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온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아사 왕을 보게 되는데, 그는 마음이 평생토록 주께 대해 완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아주 훈훈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가 있어서 마음이 기쁩니다.
한 때 마음이 주님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평생토록 주님을 향해 완전한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한 때 뜨거운 마음으로 헌신하고 충성했던 사람들은 많지만, 5년,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그 자리에서 여전히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소원이 있다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고, 오늘만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평생토록 주님 앞에서 걷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아사 왕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평생토록 주님께 완전한 마음을 품었던 아사 왕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주님께 대해 완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원하고, 주님만을 사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 르호보암과 아비얌
먼저 우리 함께 간략하게 아사 왕의 할아버지인 르호보암 왕과, 아버지인 아비얌 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열왕기상 14장 21-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유다에서 통치하였는데 르호보암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더라. 그가 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도시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암몬 여인 나아마더라.
22 유다가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되 그들이 자기들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것보다 더 많은 죄를 지어 그것들로 그분의 질투를 일으켰으니
23 그들도 자기들을 위해 모든 높은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밑에 산당들과 형상들과 작은 숲들을 세웠더라.
24 그 땅에 또한 남색 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 행하였더라.
다윗 왕의 손자이자,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 왕은 유다의 예루살렘에서 17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솔로몬의 말년에 행하였던 우상숭배를 그대로 따랐고, 이스라엘을 죄 가운데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함께 열왕기상 15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의 제십팔년에 아비얌이 유다를 통치하고
2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더라.
3 그가 전에 자기 아버지가 자기 앞에서 행한 죄들 곧 자기 아버지의 모든 죄 가운데 걸었으며 그의 마음이 자기 조상 다윗의 마음처럼 주 자기 하나님께 대해 완전하지 아니하였으나
아직 이스라엘에 여로보암이 왕일 때에,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이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3절에서는 아비얌 왕 역시 자기 아버지 르호보암의 길을 따라 죄 가운데 걸었으며, 자기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의 죽음 이후에 르호보암의 17년과 아비얌의 3년, 총 20년 동안 유다는 거의 몰락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4,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위하여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루살렘에서 등불을 주셔서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세우고 예루살렘을 굳게 세우려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족속 우리야의 일 외에는 평생토록 주의 눈에 올바른 것을 행하고 그분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어떤 일에서도 돌이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과 르호보암과 야비얌에 이르는 3대의 우상숭배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위하여 그의 후손을 남겨두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온 집을 멸하신 것같이 하지 아니하고, 평생토록 주의 눈에 올바른 것을 행하였던 다윗을 기억하셔서, 그의 집을 다시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믿음의 아버지와 어머니, 믿음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믿음의 조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 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손들이 정말 잘되기를 원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주님 앞에서 바르게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셨고,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평생토록 주께 대하여 마음이 완전하였던 아사 왕을 만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 아사 왕의 마음
그럼 지금부터 아사 왕이 주님께 대하여 완전한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열왕기상 15장 9-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9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를 통치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더라.
11 아사가 자기 조상 다윗이 행한 것 같이 주의 눈에 올바른 것을 행하여
12 남색 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고 자기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제거하며
13 또 자기 어머니 마아가가 작은 숲에 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그녀를 제거하여 왕비가 되지 못하게 하고 그녀의 우상을 멸하여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태웠으나
14 산당들은 제거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의 마음이 평생토록 주께 대해 완전하였으며
먼저 우리는 10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사 왕에게 무려 사십일 년이라는 긴 통치의 기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 왕도, 솔로몬 왕도 모두 사십년간을 통치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아사 왕에게는 1년을 더 보너스로 주셔서, 무려 사십일 년을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11절에서는 아사 왕이 다윗과 같이 주의 눈에 올바른 것을 행하였다는 평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12절에서는 그가 동성연애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으며, 자기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심지어 왕비인 마아가가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그 우상을 제거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왕비의 신분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약간 혼동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상 15장 2절과 10절의 말씀을 보시게 되면, 아비얌의 어머니의 이름도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라고 되어 있고, 지금 아사 왕의 어머니도 똑같이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라고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찾으셨습니까? 네.
또, 함께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역대기하 11장 21절 말씀을 참조해 보면, 르호보암 왕이 자기의 모든 아내 중에서 마아가를 가장 사랑하였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마아가라는 여인은 르호보암의 아내로서, 아비얌 왕의 어머니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할아버지”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아버지”라는 단어만 볼 수가 있는 것처럼, 성경은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그냥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라는 단어는 디모데의 외할머니인 로이스를 언급할 때, 한 번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마아가를 또 다시 아사 왕의 어머니라고 부른 것은, 성경에서 자연스럽게 조상들에 대하여,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아비얌의 어머니였던 마아가는 이제 자신의 아들이 3년의 짧은 통치를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다소 어린 손자인 아사 왕이 즉위한 뒤에, 옆에서 돕는 왕비로서 섭정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 왕은 아주 단호하게 개혁을 감행하여, 정치적으로나 우상 숭배의 면에서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할머니를 왕비의 자리에서 폐하고, 다시는 왕국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열왕기상 15장 14절에서는 그가 비록 산당들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지만, 그의 마음이 평생토록 주께 대해 완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께 마음이 완전한 자의 길이 어떠한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아사 왕은 먼저 남색 하는 자들, 즉 동성연애자들을 쫓아내었습니다. 지난 6월 26일 미국 대법원에서는 미국 전역에 동성결혼을 합법으로 판결하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모든 기독교인은 미국의 적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시행하고자 하는 서울시민인권조례의 항목을 보게 되면,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이나, 종교나,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발언을 하면 벌금이나 징역에 처한다는 항목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반대서명을 해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이러한 법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자세히 살펴보면 역차별법으로, 성경적 믿음을 불법으로 만들고자,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차별법이며, 기독교 말살 정책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설교하면, 다른 종교를 차별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 되고,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면, 성소수자를 차별하였기 때문에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우리나라 교육부에서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식사기도를 가르치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기준을 각 교육기관에 전달하였고, 심지어 아이의 보호자, 즉 부모라도 자녀에게 종교행위를 강요하면 인권침해이고, 정신학대라는 기준을 발표하였습니다. 현재 캐나다, 영국 등의 공립학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면 성교육 시간에 동성애가 정상적이라는 기준을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이제 정말 주님 오실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제도적으로 불법이 되어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리를 선포하는 자가 감옥에 갇히게 되고, 중세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리를 타협하지 않아 재산을 몰수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게 되는 그러한 적그리스도의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 믿음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영광의 길을 걸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주님 만날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잠들어 있었다면, 지금 이 시간 새롭게 깨어나기 원합니다. 우리가 주저앉아 있었다면, 이 시간 다시 일어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속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아사 왕을 통해 주님께 완전한 마음을 가진 자가 우상들을 제거하였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나의 유익, 명예, 권리, 자존심, 취미생활, 쾌락과 즐거움, 그 무엇이든 우리가 주님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생각하며 찾게 되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께 대해 마음이 완전한 상태인 것입니다.
** 주님만 신뢰함
이제 우리 함께 아사 왕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는 역대기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대기하 14장 9-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9 에티오피아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고 백만 명의 군대와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나아와 마레사에 이르매
10 그때에 아사가 그를 치려고 나가니라. 그들이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서 전투대형을 갖추고
11 아사가 주 자기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많은 사람들로 돕든지 능력이 없는 자들로 돕든지 주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니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치러 가나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12 이에 주께서 아사와 유다 앞에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치시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도망하니라.
8절 말씀을 보면 아사 왕의 군대는 유다 사람 삼십만 명과 베냐민 사람 이십팔만 명으로 약 58만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9절에 볼 수 있는 에티오피아의 군대는 거의 2배 가까이 되면 백만 명이었습니다. 전력이 2배 가까이 차이 나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패배하고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사 왕은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완전하다는 것은 주께서 많은 사람들로 돕든지 능력이 없는 자들로 돕든지 주님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주께 마음이 완전하다는 것은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무모하게 진행하면서, 주님이 인도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주의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돈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사람의 수를 세는 우리의 안목이,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믿음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또한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주님의 뜻이라면,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든지, 모세의 손에 들린 마른 막대기로 홍해 바다를 가르시든지, 단순하고 무식한 어부들로 하여금 세상을 뒤집게 하시든지 주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도 신뢰하고, 내 통장도 신뢰하고, 주님도 의지하고, 내 계획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완전하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 형제들의 회복
이제 우리 함께 역대기하 15장 8,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 아사가 이 말들과 또 대언자 오뎃의 대언을 듣고 용기를 내어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에서 또 자기가 에브라임 산에서부터 빼앗은 도시들에서 가증한 우상들을 제거하고 또 주의 주랑 앞에 있던 주의 제단을 재건하였으며
9 온 유다와 베냐민과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에서 나와 그들과 함께 거하는 나그네들을 모았는데 그들이 주 곧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나와 그에게로 많이 돌아왔더라.
우리는 여기서 아사 왕을 통해 주님께 완전한 마음을 가진 자가 형제들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주님께 완전한 마음을 가진 자는 교회의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8절에서 대언자 오뎃의 말씀 선포를 듣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또한 형제들과 함께 우상들을 제거하고 주의 제단을 건축하였습니다. 아사 왕은 또한 유다와 베냐민만이 아니라,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지파의 형제들도 모았고 함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기를 갈망하는 형제자매들이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나와 남 왕국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 교회를 핍박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예수님 자신으로 여기셨습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주님께 대하여 마음이 완전하다는 것은, 교회에 대하여 마음이 완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대하여 마음이 완전하다는 것은, 교회 안의 각 지체 한 명, 한 명에 대하여, 형제자매에 대하여 마음이 완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 주님과만 좋은 교제의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단에 헌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형제자매들을 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자매들을 섬긴다는 것은 잘못한 것을 찾아내서 지적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누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발견하고 소문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섬긴다는 것은 부족함을 채운다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나의 것을 기꺼이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한 울타리에 넣으신 것은,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헐뜯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께 완전한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걷는다면, 우리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도 회복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간증을 듣고 격려를 받을 것이고, 용기를 낼 것입니다. 나그네처럼 방황하던 지체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대해 완전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실패
이제 우리 함께 역대기하 16장 7-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왕이 시리아 왕을 의지하고 주 왕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시리아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피하였나이다.
8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룹 사람들이 심히 많은 병거와 기병을 갖춘 큰 군대가 아니었나이까? 그러나 왕이 주를 의지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을 왕의 손에 넘겨주셨나이다.
9 주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이리저리 달리며 완전한 마음으로 그분을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그분의 강하심을 보이시나니 이 일로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은즉 이제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0 그때에 아사가 그 선견자에게 노하여 그를 감옥 집에 가두었더라. 그가 이 일로 인하여 그에게 격노하였더라. 또 바로 그때에 아사가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아사 왕의 실패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쳐들어 왔을 때, 에티오피아와 싸울 때처럼 주님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시리아 왕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대언자 하나니는 그것을 책망하였는데, 그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12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아사의 통치 제삼십구년에 그의 발에 병이 생겨 마침내 그의 병이 심히 중하게 되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주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사들에게 구하였더라.
여기서도 우리는 아사 왕의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사 왕의 말년에 발에 병이 났는데, 아사 왕이 주님께 구하기보다는 사람들, 의사들을 더 찾고 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그가 거의 40여년을 힘차게 주님께 완전한 마음으로 살아왔을지라도, 한 순간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매순간 주님만을 붙들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매순간, 숨 쉬는 순간마다,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사 왕이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소 실패하고 넘어진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평가하실 때에는 그가 평생토록 주님께 완전한 마음을 가졌다고 평가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긍휼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참되게, 완전한 마음으로 주님만을 따르기를 원하지만, 넘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실 때, 아사 왕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 원합니다. 이러한 좋으신 주님을 우리가 완전한 마음으로 따르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평생토록 주님께 완전한 마음”이라는 주제로 아사 왕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주님께 마음이 완전한 사람은 먼저 죄악들을 제거하고, 우상들을 제거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다른 어떤 것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의지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길을 걷는다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오랜 시간 주님께 온전했다 할지라도, 주님을 붙들지 않는 순간에 언제라도 넘어질 수가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평생토록”이라는 단어를 우리들의 마음 깊이 담아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단지 인생의 한 순간에 주님을 향해 뜨거웠었던, 과거형의, 믿음의 추억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늘 생생하게, 현재진행형으로 주님께 마음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평생토록, 주님 앞에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하여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붙들어주시고, 함께해 주시며,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