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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 Kings
로빈시리즈
2015.09.23 00:29

[#20]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왕상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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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로빈
2015.09.20.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설교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왕상 20:28)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상 20장입니다. 열왕기상 20장 2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나아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시리아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온 큰 무리를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니라.
저는 오늘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열왕기상 20장 28절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여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주님을 알고 믿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 한 종류는 주님을 모르고 믿지 않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주님을 알고 믿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주님을 깊이 잘 아는, 혹은 알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이고, 또 한 종류는 구원은 받았지만 주님을 잘 모르거나, 알기를 원하는 사모함이 부족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먼저 올바르고 체계적인 성경지식을 안다는 것과 오랜 신앙생활을 통하여 주님에 대한 과거의 경험을 풍성히 가지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성경지식과 신앙 간증은 주님을 알아가는 믿음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현재 주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라는 고백은 단지 성경지식을 더 많이 알기 원한다거나, 단지 주님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늘 주님과 친밀하기 원하고, 오늘 주님과 동행하기 원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그 누구보다도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님을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에게 메시아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미가서 5장 2절을 즉석에서 인용하고 암송하면서 가르쳐줄지언정, 그 누구하나 함께 가서 경배하겠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당시 지혜와 지식에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고, 황금의 성전을 건축할 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지만, 이후에 그는 우상숭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타락한 상태의 솔로몬을 보면서 그가 주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휴거와 재림의 날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여러 가지 성경지식과 이스라엘의 상황과 교황의 움직임과 각종 자연현상과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정황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성경공부를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정말 거룩하고, 정결하게 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고 예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 예수님의 재림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단순히 십자가의 삶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20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합 왕에게 주님 자신을 얼마나 알려주기를 원하시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계속해서 알려주고 또 알려주는데도, 주님을 끝까지 알지 못하는 아합 왕의 모습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왕이 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은 주님을 아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합 왕에게 알려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원하고, 너무나 선하시고 좋으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 자신이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사람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상 20장 1-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시리아 왕 벤하닷이 자기의 온 군대를 함께 모으니 서른두 명의 왕이 그와 함께 있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그가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곳을 대적하여 싸움을 하며
2 사자들을 그 도시 안으로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벤하닷이 이같이 말하노라.
3 네 은과 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 곧 가장 잘생긴 자들도 내 것이니라, 하매
4 이스라엘 왕이 응답하여 이르기를, 오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대로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왕의 것이니이다,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타락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내부적으로 대언자를 보내셔서 경고의 말씀을 주셨고, 돌이키지 않았을 때 외부로부터의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아합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대언자 엘리야를 통해 확실한 경고를 주셨습니다. 기근과 비를 통해 말씀하셨고, 하늘로부터 주의 제단으로 내려온 불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시리아와의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엘리야를 통하여 충분히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주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 아합의 특징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딱딱하게 버티면서도, 세상과 육신 앞에서는 쉽게 인정하고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오직 시리아 왕의 단 한마디 말에 응답하면서, 왕의 말씀대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왕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9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말씀은 우리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몸과 영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우리의 시간과 힘과 능력을 시리아 왕에게, 이 세상에 쉽게 내어주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나의 오늘 하루의 삶이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 말씀을 힘입어, 우리의 눈과 귀와 입과 손과 발을, 우리의 몸과 시간과 힘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 조언을 주시는 하나님
이제 우리 다시 열왕기상 20장으로 돌아와서,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낼 터인즉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뒤져서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의 손에 담아 가져가리라, 하니라.
7 이에 이스라엘 왕이 그 땅의 모든 장로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이 사람이 화를 끼치려 하는 줄을 보고 주목하라. 그가 내 아내들과 자녀들과 은과 금을 취하려고 사람을 내게 보내었으나 내가 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였노라, 하니
8 모든 장로와 온 백성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말고 동의하지도 마옵소서, 하니라.
시리아 왕 벤하닷처럼 세상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시간과 인생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합 왕처럼 세상과 마귀와 육신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너무나 자주 넘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화를 끼치려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유익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합에게서 한 가지 훌륭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많은 조언자들과 의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모든 상황을 다 털어놓고, 정직하게 조언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다고 말씀하셨고, 좋은 조언들을 가지고 전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교회가 필요하고 형제자매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교회를 주셨고, 귀한 형제자매들을 주셨습니다. 교회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고 은혜로우신지, 주님께서는 아합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과 온 백성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너무나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왕이지만, 또 다시 그에게 기회를 주시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말고 동의하지도 마옵소서.” 시리아 왕의 말 한마디에 위축되고 약해져버린 아합 왕에게 얼마나 용기가 되고, 힘이 되는 조언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말고 동의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들어올 때, 그것을 다 생각해 보고 심사숙고해보는 것이 아니라, 육신 가운데 들어오는 모든 생각에 대해서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말고, 동의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백성들의 말대로 시리아 왕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말로 응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시리아 왕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열을 갖추고 싸움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열왕기상 20장 12,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2 벤하닷이 왕들과 천막에서 마시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전열을 갖추라, 하매 그들이 그 도시를 향하여 전열을 갖추니라.
13 보라, 한 대언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아와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이 온 큰 무리를 보았느냐? 보라, 내가 이 날 그 무리를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내가 주인 줄을 네가 알리라, 하거늘
너무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에게 한 대언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리아의 큰 무리를 아합의 손에 넘겨주시고 승리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쟁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며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지 심판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아합 왕에게 하나님 자신을 가르쳐주시는 너무나 은혜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승리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합 왕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먼저 찾아와주시고,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건져주시고, 도와주시고,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너무나 반가운 한 사람을 볼 수가 있는데, 그는 바로 한 대언자입니다. 엘리야가 방황하고 있을 때, 아직 회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칠천 명 가운데 한 명을 엘리야 대신 아합 왕에게 보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약해져있을 때, 우리의 사명과 우리의 부담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지체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는 비록 이름도 없이 등장하였지만, 그를 통해 아합은 용기를 얻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 청년들이 이끈 승리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상 20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해 그리하시리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여러 지방의 통치자들의 청년들을 통해 그리하리라, 하매 이에 그가 이르되, 누가 싸움을 지시하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하거늘
이 말씀을 보면서 갑자기 다윗이 생각납니다. 물론 다윗은 직접 주님과 대화를 주고받았고, 아합은 여기에서 대언자와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그는 분명히 주님의 뜻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대언자의 대답은 청년들을 통해 승리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타락한 아합 왕의 시대였다 할지라도, 그 다음 세대인 청년들을 통해서 놀라운 승리를 주시고, 청년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새롭게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이 청년들이 자라나서 이스라엘 왕국의 주요인물들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영적인 흐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17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여러 지방의 통치자들의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사람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여기서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청년들이 앞장서서 싸움을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벤하닷은 자신이 승기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여 마시고 취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방심하고 있었고, 청년들이 어쩌면 화친을 취하러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싸우러 올지라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청년들과 함께하셨고, 겁 없는 담대한 청년들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청년들이 앞장서서 시리아 사람들을 쓰러뜨리자, 시리아 사람들이 술렁이면서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 뒤에 이스라엘 왕과 온 백성이 나가서 시리아 사람들을 쓰러뜨렸던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주님께서 우리교회에서도 청년들을 믿음으로 굳게 세워주시기를 원합니다. 누구보다도 우리의 청년들 가운데 주님을 알고 앞장서서 믿음의 길을 가며, 승리의 싸움을 싸우는 형제자매들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2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대언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가서 힘을 키우고 왕이 행하는 일을 주목하고 보소서. 해가 돌아오면 시리아 왕이 왕을 치러 올라오리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에게 또 다시 대언자를 보내셔서 내년을 대비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패배한 시리아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더 강력하게 침략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영적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승리했다고 해서, 세상과 마귀와 육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번 영적 승리를 맛보았다면, 그 다음에 방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겸손히, 더 간절히 주님만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합 왕에게 힘을 키우고 전쟁을 대비하라고 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언제나 깨어서 주님을 섬기고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이제 우리 함께 처음에 읽었던 열왕기상 20장 2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나아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시리아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온 큰 무리를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니라.
시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의 신이고, 골짜기와 평야의 신은 아니기 때문에, 평야에서 싸우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또 한 번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께서만이 주이심을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상태로 보자면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시리아의 압제를 당해도 마땅할 만큼 우상숭배와 온갖 죄악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아합 왕에게 놀라운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고, 그들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3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그 남은 자들이 아벡으로 도망하여 도시로 들어갔더니 성벽이 그 남은 자들 중에서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져 내리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도시에 이르러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위에 크나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리아 사람들 십만 명을 쓰러뜨렸고, 또 하나님께서는 도망가는 시리아 사람들 이만 칠천 명을 성벽을 쓰러지게 하셔서 한 번에 쓰러뜨리셨습니다. 그러나 벤하닷은 끝까지 살아서 도시의 방까지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 아합의 어리석은 선택
이제 이 벤하닷을 어떻게 처리하게 되었는지, 우리 함께 열왕기상 20장 32-3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2 이에 그들이 굵은 베를 허리에 두르고 밧줄을 머리에 묶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말하기를, 원하건대 나를 살려 주옵소서, 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그가 아직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니라, 하매
33 이제 그 사람들이 그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부지런히 살피다가 얼른 그 말을 받아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하니 그때에 그가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데려오라, 하니라. 이에 벤하닷이 그에게 나아오매 그가 그를 병거에 올라타게 하니라.
34 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도시들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가 사마리아에 거리를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마스쿠스에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하니 이에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언약을 주며 당신을 보내리라, 하고는 이에 그와 언약을 맺고 그를 보내니라.
어쩌면 열왕기상 20장이 정말 훈훈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합 왕의 충격적인 발언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벤하닷을 향해서 “그는 내 형제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합 왕과 벤하닷은 서로 아버지 때부터 대적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지켜낼 때에는, 반드시 이방 민족들을 진멸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합 왕은 지금 단지 벤하닷을 살려주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를 형제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잘 몰랐으면 대언자에게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는 경솔하게 모든 일은 좋은 마음으로 결정해 버렸던 것입니다. 

세상과 육신은 결코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고, 우리의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은 친구가 될 수 없고, 거짓말과 진리는 결코 형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마지막 순간까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셨지만,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지는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정말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였지만, 할례와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칼같이 단호하였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코 진리를 타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은 교회에 누룩이 있도록 허용해도 된다거나, 죄를 묵인해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벤하닷은 결코 아합의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승리와 은혜는 아합으로 하여금 주님께서 어떠한 분인가를 알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합이 주님을 알았더라면 주님의 뜻에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주님을 알지 못했고, 단지 승리에 너무 기분이 좋았던 나머지, 자기 기분대로 벤하닷에게 선을 베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42,4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2 그가 그에게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진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가 네 손에서 놓아주었은즉 네 생명이 그의 생명을 대신하고 네 백성이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며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결국 큰 승리와 기쁨으로 행복하게 끝날 수 있었던 열왕기상 20장이 또 다른 심판의 말씀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크게 기뻐하였지만, 아합 왕은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합은 자기가 형제라 불렀던 바로 그 시리아와 또 다시 전쟁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주님을 알고,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직 주님만이 옳으시고, 주님만이 우리를 참되게 사랑하시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가 가장 귀하고 안전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비록 아합 왕처럼 어리석고 약할 때가 많이 있지만, 주님께서 자격 없는 자에게 먼저 조언을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승리를 주실 때,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들과 모든 일들을 통해 주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 각자의 열왕기상 20장이 기록된다면, 해피엔딩으로 기록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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