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시편 Psalms

본문시작

오늘:
113
어제:
246
전체:
1,335,180
시편 Psalms
설교
2013.09.17 22:53

나의 빛과 등불(시 119:105)

(*.163.81.81) 조회 수 1179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이름 로빈


http://robinbox.net/ot/poetic/19psalm/19psalms119105_mylightlamp_20041215_robin.html


* 설교 일시 : 2004.12.15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나의 빛과 등불(시 119:105)


제목 : 나의 빛과 등불
본문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Thy word is a lamp unto my feet, and a light unto my path.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9편 105절 한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을 다 찾으셨으면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나의 빛과 등불”이라는 제목으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에 기름부어 주시라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의 본문인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은 이제 갓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암송해야할 구절이 무엇이냐 했을 때 첫 번째로 손꼽히는 구절들 중에 하나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이요, 믿음생활의 기초원리요, 평생 잊지 말아야할 좌우명과도 같은 중요하고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인생을 언급할 때 우리는 자주 “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과거를 언급할 때는 “지나온 길”이라고 표현하며, 미래를 언급할 때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의미로 “진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경은 구원받지 않은 인생에 대해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사 53:6上)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잃어버린 자들에게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사 55:7上)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잠 14:12, 16:25)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기 때문이니라. 주가 말하노라”(사 55:8下)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길을 잃고 헤매며 각각 자기의 길로 갔다가 자기 길과 자기 생각을 버리고 길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나아온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 구절인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은 참으로 거듭난 우리들의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본론
인생 길의 빛과 등불이 되는 주의 말씀

우리가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았다면 성경에서 “빛”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중요하게 사용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빛이 있으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요”(요일 1:5)라고 말씀하시고,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빛의 자녀들”(엡 5:8)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성경은 주님과 우리가 나누는 교제를 가리켜 “빛 가운데의 사귐”(요일 1:7)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무장을 가리켜서 “빛의 갑옷”(롬 13:12)이라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탄은 자기 자신을 “빛의 천사”(고후 11:14)로 가장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길을 선택하고 걸어나가는 과정 가운데 주의 말씀의 빛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입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길은 짙은 흑암과도 같아서 아무리 그것을 예상하고 예측할지라도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우리의 발걸음을 한발한발 비춰주는 등불과도 같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헛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축복되고 의미 있는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주의 말씀을 발 앞에 비춰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말씀의 빛을 발 앞에 두어야 합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대할 때 “아멘”하며 자신의 빛과 등불이 주의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관념과 자신의 판단으로 길을 선택하여 걸어갑니다. 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식이 많고 믿음이 좋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가르침을 자신의 빛과 등불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나의 앞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주의 말씀을 주의하고 있습니까? 주위 환경과 나의 상황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고려하기 전에 참으로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의 빛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지식으로 길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한복음 1장을 보시겠습니다.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더라.” 침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큰 자는 없다”라고 말씀하실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마 11:11).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대언자들 중의 가장 큰 대언자요(눅 7:28),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었습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게로 나아와 자신의 길을 묻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리들이 와서 “선생님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묻자, “너희에게 정해 준 것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고 충고하였고, 군사들도 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물으니 “아무도 폭행하지 말고 아무도 거짓으로 고소하지 말며 너희가 받는 급료로 만족하라”라고 말해주었습니다(눅 3:12-14).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침례자 요한을 보며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할 정도로 그는 거룩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대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해 증언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더라.” 성경은 단호하게 여자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들 중에 가장 큰 자요, 가장 큰 대언자였던 침례자 요한 조차도 “그는 이 빛이 아니요”라고 못박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람의 말과 가르침도 우리 길의 빛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와 같은 놀라운 사도들도 다만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일 뿐이며, 그들 역시 이 빛을 주의하며 길을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빛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우리의 길에 유일한 빛이 되시는 주의 말씀을 우리 생활 가운데 더 가까이 하기 원합니다.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
베드로후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 13절에서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3 참으로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너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여 일깨우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하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바와 같이 내가 머지않아 반드시 이 장막을 벗어야 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 15 또한 내가 떠나간 뒤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애쓰리니”

성경에서 장막은 우리의 육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장막을 벗는다는 말과 떠나간다는 말을 번갈아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머지않아 반드시 이 장막을 벗고 주님께로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그리고 내가 떠나간 뒤에도 항상 너희가 이것들을 기억하도록 일깨우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부터 18절에서는 베드로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6 그 까닭은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게 할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오히려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17 그 까닭은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이니라. 18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는 자신이 전파하고 가르친 말씀들이 거짓이 아니요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도 아니라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직접 귀로 들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떠한 영광으로 오실 것인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체험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과 환상을 보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베드로처럼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며 증언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도 베드로의 결론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너희 마음속에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사도 베드로는 결코 자신의 체험을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길에 유일한 빛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온 한 사도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상황을 판단하고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환경을 주의할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을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변화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심지어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도 듣고, 모세와 엘리야도 보았던 베드로가 말하기를,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주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하시는 한가지 항목이 있는데 그것은 주의 말씀을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시듯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결론
실제적인 시간사용

말씀을 주의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루에 10분 성경을 펼쳐서 읽는 것입니까? 매주일 예배당에 모여서 설교를 듣는 것입니까? 정치가들은 많은 신문과 사설를 매일 읽고 생각하며 정리합니다. 주식투자가들은 많은 경제분석과 세계동향을 순간순간 살피며 주의합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이러한 일들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정치계에서 어떠한 처신을 해야할지, 앞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할지를 알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합니까? 우리의 발걸음을 어디로 향하며 우리의 길을 어떻게 정해야 합니까? 우리가 주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매순간 묵상하며 샅샅이 찾고 기억하며 탐구하고 연구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헤매며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후회하는 인생을 살 것입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주의를 기울이며 살펴야할 1순위가 있다면 바로 주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의 말씀을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고백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