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 나를 따를지니라(눅 9:23)

by 로빈 posted May 27,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이름 로빈

2012.06.12.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나를 따를지니라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923절 말씀입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를 따를지니라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나를 따를지니라

우리의 인생은 누군가를 따라가는 기나긴 여행의 길입니다. 우리는 처음 태어났을 때 부모님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엄마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엄마라고 계속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엄마라고 따라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우리는 사람들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잼잼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승연이는 물티슈를 뽑아주면 방바닥을 닦는 행동을 하는데, 그것은 할머니나 엄마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조금 자라나게 되면 자신보다 조금 큰 형이나 누나, 오빠나 언니가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잘 구분하지 못할 때에도 무조건 따라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아이가 더 자라나 여러분과 같은 학생의 나이가 되면 친구들이 하는 말투를 따라하거나, 웃는 소리를 따라하거나, 걷는 모습을 따라하거나, 행동하는 습관까지도 따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유명한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하기도 하고, 유명한 만화의 대사를 따라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라나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재미있어서 따라하기도 하고, 때로는 멋있어 보여서 따라하기도 하고, 때로는 존경스러워서 따라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 누구를 닮으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를지니라.”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태복음 112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정확하고 분명하게 우리가 따라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분, 세상에서 가장 선하신 분, 세상에서 가장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분,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으신 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우신 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신 분,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야말로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유일한 모범이 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2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거절하며,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주장하는 것, 내가 고집하는 것, 내가 열망하는 것, 나의 뜻을 부정하고 거절하며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 자체를 부정하고 거절하며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면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의 자존심을 부정하며, 때로는 나의 유익을 거절하고, 때로는 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때로는 나의 기분을 무시하고, 때로는 나의 아픔과 상처까지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럽고 죄 많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대신 고통과 모욕과 수치를 다 견디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그렇게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의 기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의 뜻을 고집부리며, 나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은 결코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표시는 사랑과 부드러움과 온유와 겸손인 것입니다.

 

형제의 기쁨을 위해 나의 슬픔을 받아들이며, 자매의 유익을 위해 나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며, 형제의 높아짐을 위해 나의 낮아짐을 기뻐하며, 자매의 만족을 위해 나의 불만족을 내려놓는 길이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며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믿음의 길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이가 스무 살, 서른 살이 되면서부터 자동적으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매순간 우리의 선택의 문제인 것입니다. 나 자신을 거절하고 예수님을 선택하며, 나 자신을 부정하고 형제자매를 선택하는 매순간의 선택이 모아져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참되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에 모여서 종교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잘 암송하고, 문제를 잘 맞추며, 아는 찬송도 많고, 기도도 잘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잘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표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에서 고통의 사람이요 슬픔의 사람이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잠을 잘 처소도 없이 여행을 다니셨고, 늘 피곤하고 굶주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주셨고, 생명까지도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이러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를 따를지니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누가복음 92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두 번째 방법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한 달 동안 쉬다가 하루 동안 벼락치기로 몰아서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길은 날마다 걸어가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날마다 걸어가는 믿음의 삶이 진짜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일요일날 교회에 왔을 때만, 믿음이 있는 척, 학교에 나와서 선생님들과 함께 할 때에만 올바른 척 하는 것은 가짜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자기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처형하는 도구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가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을 함께 펴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인정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모욕을 당한다할지라도 반응할 수 없고, 죽은 사람이 손해를 당한다할지라도 대항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십자가의 삶을 산다면 우리는 참된 사랑과 겸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화가 나고 욕이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죽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참을 필요도 없이 화를 내지도 욕을 하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 갈라디아서 220절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십자가의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십자가에서 죽고, 오직 내 안에 강력한 활동으로 역사하시며 살아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신비한 믿음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화가 나올 상황에서 화가 나오지 않고, 욕이 나올 상황에서도 욕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폭포수같이 흘러넘치는 거대한 믿음의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화를 참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십자가를 지고 성령 충만을 힘입어 주님의 성품인 사랑과 겸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고린도전서 1531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안에서 가진바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매일 자살을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육신이 날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죽음에 넘겨지고 바울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며 역사하시는 길을 따라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정리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 주님을 따르고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되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대로 자신을 부인하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주님을 섬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주님을 따르며, 또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듣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척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627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요, 그때에 그가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가 오늘 예수님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먼저 예수님께서 더럽고 죄 많은 나를 위해 그렇게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갚을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우리가 손해보고 희생한 모든 것들을 놀랍고 찬란한 영광 중에 다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