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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완전한 사랑(골 3:12-14)

by 로빈 posted Dec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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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로빈

* 설교 일시 : 2011.06.19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완전한 사랑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골로새서 3장입니다. 골로새서 312절부터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완전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나 세상의 많은 노래들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수많은 종교단체들도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12절에서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의 사랑은 점점 식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것 같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죄를 사랑하는 이상한 형태의 사랑으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경이 말씀하시는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채워주시고 우리 마음을 강하게 일으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랑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을까요? 먼저 로마서 138절부터 10절까지 보시겠습니다.

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느니라.

9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너는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어떤 다른 명령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이 말씀 안에 간략하게 들어 있느니라.

10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사랑은 율법의 성취이며, 율법의 완성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모든 계명을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사랑은 교육의 목표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목표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순종하며 따라야 할 하나님의 완전한 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할 때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비록 실제로 살인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남을 미워한다면 성경은 그것을 살인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살인과 같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둑질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나의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함께 성경을 펴지는 않겠지만, 잘 아시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은 놀라운 지식과 뛰어난 능력과 위대한 헌신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식이나 능력이나 섬김이 부족할지라도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한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주님을 눈으로 보며 만나는 순간부터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고, 소망도 장차 주님을 만나는 날 모두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경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기독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십시오. 아마도 대부분 원수를 사랑하라가 아니겠느냐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랑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최종적인 가르침입니다. 심지어 요한일서 48절에서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의 표시는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람

다함께 마태복음 5장을 한번 보실까요? 마태복음 543절부터 48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3 그들이 말한바, 너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느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되리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기준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기준의 사랑, 성경적 기준의 사랑, 완전한 사랑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인간적 기준의 사랑은 나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적 기준의 사랑은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악의를 품고 미워하는 원수들에게 똑같이 미워하고 더 크게 복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기준의 사랑은 원수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며, 악의를 품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햇빛과 비를 공평히 주시는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랑에 대하여 보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하면 아무 보상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심지어 강도들도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은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는 악한 자와 선한 자 모두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읽은 마태복음 54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여기에서 완전한 것은 사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지혜롭거나, 능력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성품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적인 기준에서 완전한 사람은 키도 크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능력 있고 절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성경말씀의 기준에서 완전한 사람은 키가 작을지라도, 못생겼을지라도, 조금 어벙하더라도, 잘하는 일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사랑의 영으로 가득한 사람인 것입니다. 문제가 없고 실수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하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완전한 교회

마찬가지로 문제가 없고 실수가 없는 교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사랑을 가진 교회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계시록 2장과 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가운데 형제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진 필라델피아 교회는 아무런 책망도 받지 않고 오직 적은 능력으로 내 말을 지켰다는 주님의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교회를 찾아 방황하는 것을 불 수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고,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며, 성경 지식에서도 뛰어나고, 누가 봐도 멋지고 완벽한 교회, 그런 교회를 꿈꾸며 찾아다닙니다. 전에 제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완전한 교회를 찾으신다면 여러분은 절대 그 교회에 들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교회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지 않으셨고, 건강한 사람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죄 많고, 어리석고, 연약한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고 부족한 우리들이 모인 이 모임이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완전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 말씀인 골로새서 31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을 때 우리는 완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쉬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고 실수가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문제가 많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단순히 나와 다른 스타일로 말하고 행동하는 형제자매를 보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나와 다른 형제자매와 친절하게 대화하는 것도 어렵고, 때로는 나에게 잘못한 형제자매에 대해 참는 것도 힘든데,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약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헐뜯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려 그 부족함을 채우고 공급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문제와 허물을 흉보고 헐뜯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덮어주고 가려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나의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비판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연약한 지체가 아니라 비판하는 지체입니다. 우리 모두가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받는 자로서

오늘 본문 말씀인 골로새서 3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저는 오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사랑이라는 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완전함이 사랑이라는 점, 그리고 완전한 교회가 되는 길도 사랑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처럼 긍휼히 여기는 심정, 친절, 겸손한 마음, 온유함, 오래 참음, 서로 참고 용서하는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어떻게 이러한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먼저 12절에 등장하는 사랑받는 자로서라는 말에 주목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기를 명령하시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계를 정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고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전혀 계산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욥기 1516절에서는 사람이 불법을 물마시듯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사랑을 받은 이유는 우리가 더럽고 추악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만하고 가증스러운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해 긍휼히 여기는 심정을 가지셨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겸손과 온유함으로 우리를 찾아오셨고, 지금도 늘 주님을 거역하는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시며 용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롭고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교만할 수 없으며, 감히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1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며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모두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더럽고 추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사랑이었으며, 생명까지 기꺼이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다함께 잠시 누가복음 7장을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736절부터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한 바리새인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눈물과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속으로 여자를 정죄하면서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41절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고 계십니다.

41 그분께서 이르시되, 빚을 준 어떤 사람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는데

42 그들이 전혀 갚을 것이 없으므로 빚 준 사람이 두 사람 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나니 그런즉 내게 말해 보아라. 그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시거늘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많이 용서해 준 사람이니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옳게 판단하였도다, 하시고

또한 47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 여자는 많은 죄를 용서받았느니라. 이는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적은 것을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하느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시몬에게 용서와 사랑의 비례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하게 되며, 적은 것을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다시 한 번 깜짝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적게 용서받으셨습니까 아니면 많이 용서받으셨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용서받은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그 용서,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만약 나는 솔직히 적게 용서받은 것 같다, 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 죄가 정말 적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면서 죄인들에게 침 뱉음 당하시고, 수염이 뜯기시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시기까지 모든 사람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 같은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나의 결심과 노력으로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인한 감격과 감동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을 입으라

우리가 처음 읽은 골로새서 314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성경은 사랑을 입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사랑을 입으라고 표현하셨을까요? 그것은 이 사랑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위에 임할 때, 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을 입지 않으면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께 놀랍게 용서받은 자로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다면 그것처럼 수치스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닙니다. 사랑은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의 완성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조건을 걸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한계를 정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의 모습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짊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우리 자신의 결심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고 공급되며,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가장 분명한 표시는 오직 사랑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