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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하나님론> 하나님의 속성 – 지혜와 전지성(공유적 속성)

by 로빈 posted Dec 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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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28_[조직신학]하나님의속성-지혜와전지성(공유적속성)(교사용).hwp

☞ 20130428_[조직신학]하나님의속성-지혜와전지성(공유적속성)(학생용).hwp



<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하나님론> 하나님의 속성 – 지혜와 전지성(공유적 속성)



1. 하나님의 전지하심 - 지식과 정보
※ 전지하신 하나님(God of Omniscience) - 지식에 있어서 완전, 무한하심(시 147:5, 요일 3:20)  
 (1) 과거의 일들을 처음부터(태초부터) 아시는 하나님(사 46:10, 48:3,5)
 (2) 미래의 일들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행 2:23, 롬 8:29, 롬 11:2, 벧전 1:2)
 (3) 자연의 일들을 완전하게 아시는 하나님(욥 37:16, 시 147:4, 마 10:29,30)
 (4) 사람을 아시는 하나님(삼상 2:3, 시 94:11, 시 103:14, 시 139:1,2, 겔 11:5, 행 1:24, 15:8)
   → 고난과 수고를 아심(출 3:7, 욥 23:10, 마 6:4,6) ─┬─ 공정한 보상(감사와 평강)
   → 필요와 부족을 아심(마 6:8,32)         ─┘
   → 은밀한 죄들을 아심(왕상 8:39, 시 90:8, 히 4:13) ── 정의의 심판(두려움)
 (5) 알지 못하심/기억하지 않으심(사 43:25, 렘 31:34, 히 10:17 / 마 25:12, 7:23



2. 하나님의 지혜 - 목적과 계획
※ 삼위 하나님의 지혜

 (1) 아버지(성부) – 마 6:9,32, 10:30
 (2) 아들(성자) – 마 23:28, 요 2:25, 6:64, 고전 1:24,25
 (3) 성령 – 사 11:2, 엡 1:17

*삼위의 특별한 구분 없이 언급된 구절들
욥 9:4, 욥 12:13, 시 104:24, 잠 3:19, 사 40:14,28, 55:8,9, 렘 10:12, 단 2:20, 롬 11:33, 16:27, 약 1:5, 계 7:12



3. 지식과 지혜

 지식

지혜 

  아는 것

  분별과 적용(활용/응용)  

  머리로 아는 것

  마음으로 느끼는 것 

  이론적

  실천적 

  아는 것이 목적 

  사는 것이 목적 

  마음/의지와 분리 

  마음/의지와 연합


하나님
→ 우리의 죄를 알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구원하시려는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세우심
→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은 모두 아실뿐 아니라 친히 느끼시고 긍휼히 여기심

사람
→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아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사는 것임, 이론이 아닌 실천의 믿음!

※ 칼빈주의 예정론(운명론)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잘못된 이해
내용 :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전지하심 가운데 미리 결정하셨다는 주장(롬 8:29-30, 엡 1:4,5,11).
적용 : 복음 전파/전도를 하지 않음(선교사역 필요 없음)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이므로(운명) 수동적으로 살아감
   *사탄의 계략 - 사람의 수동성(윤회설과 카스트 제도)
*다윗의 운명은 결정되었는가? - 삼상 23:11-13
*바른 이해 - 영원하신 하나님 vs 오늘을 사는 나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책임인가? 잘못 선택한 나의 책임인가?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지혜와 지식
(1) “알지어다, 이해하라.”(시 34:8, 100:3, 잠 4:5-7, 엡 5:17, 딤후 3:1, 벧후 1:20, 요일 4:2)
(2) “지식 없음”(무지함)의 위험(호 4:6, 롬 10:2, 잠 11:9)
(3) “지혜가 없는 지식”의 위험(고전 8:1,11, 딛 1:16)
(4) 지혜와 지식의 근원(시 111:10, 잠 1:7, 삼상 18:14, 엡 1:17, 고전 1:30)
(5) 가장 뛰어난 지식 - 주님을 아는 것(빌 3:8, 요 17:3, 딤후 2:15, 엡 4:13, 골 1:10, 벧후 1:8, 3:18)
(6) “무계획”은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믿음인가? - 창 50:20, 시 33:11, 사 46:10, 행 20:27, 엡 1:11
(7) 우리의 계획에 대한 지혜로운 자세 - 잠 15:22, 16: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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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8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전성경공부


<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하나님론> 하나님의 속성 – 지혜와 전지성(공유적 속성)


이승선


Opening

안녕하세요? 오늘도 계속해서 조직신학, <하나님론>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공부,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의 속성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지혜와 전지하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뒤쪽에 요약 프린트를 챙겨주시고요. 잠시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전지하심 – 지식과 정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전지라는 말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고 완전하게 알고 계시며, 그분의 지식은 무한하십니다. 우리 함께 요한일서 3장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진대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니라.

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시편 147편 5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고 권능이 크시며 그분의 명철은 무한하시도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에서 완전하시고 무한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구체적인 언급들을 살펴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셨기에, 태초부터, 처음부터 있었던 모든 일들을 완전히 아시는 분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미래의 일들 또한 완전히 아시는 분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신 온 우주와 자연 만물에 대해서도 완전히 알고 계심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기 37절 16절을 읽어드리면, 이러한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구름이 균형을 잡는 것과 지식에서 완전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그대가 아느냐?


지식에서 완전하신 그분,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지식에서 완전하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아시며,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세상에 대하여 완전하게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함께 시편 139편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하여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앉고 일어서는 외적인 동작에 대해서 아시며,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내적인 생각까지도 이해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어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모르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정보와 지식은 완전합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우리 함께 사람을 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성경구절들을 빠르게 몇 군데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린트 1번 박스의 4번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욥기 23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고난 중에 있을 때에, 자기 자신은 왜 이런 일들을 당하는지 알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길을 아실뿐만 아니라, 그분이 나를 단련하시는 중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아십니다. 또한 우리 함께 마태복음 6장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4-6절을 보시겠습니다. 

4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중에 있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5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6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수고에 대하여 정확히 보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칭찬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제와 기도와 섬김에 대하여 정확히 아실뿐만 아니라, 드러나게 갚아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는데, 바로 우리의 고난과 수고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 함께 8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교도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이미 그분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로 그분께 나아와 구하며, 교제하기를 원하시지만, 똑같은 말을 주문처럼 의미 없이 반복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한 내용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우리 함께 시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시편 90편 8절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불법들을 주 앞에 두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법과 모든 은밀한 죄들도 아십니다. 나의 가족도, 친구도 모르는 나만의 모든 은밀한 죄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4장 13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눈앞에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아무것도 가릴 수가 없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수고를 아시며, 필요와 부족을 아시고, 또한 모든 은밀한 죄들을 아십니다. 

우리가 전지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한 면에서는 위로와 감사와 평강을 가질 수 있지만, 또 한 면에서는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못하시겠다, 알지 못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부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외면하시는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보혈 아래 들어온 우리들의 모든 죄와 불법에 대해서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심판의 자리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자신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행하였다고 말하였을 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주님과 관계가 없는 자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프린트의 1번 박스 5번 항복의 끝부분에 보시면 마태복음 25장까지만 적혀있는데, 마태복음 25장 12절이라고 적어주시고, 또한 마태복음 7장 23절도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실 때 한 번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네, 이렇게 우리는 간략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며, 특별히 우리들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 계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2. 하나님의 지혜 – 목적과 계획

이제 우리 프린트의 두 번째 박스를 보시겠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지혜라고 된 부분은 특별히, 성부 아버지 하나님, 성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의 전지하심과 지혜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나눠본 것입니다.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기록하고 있고, 또한 아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요한복음 6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6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현재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정말 믿는 자인지, 믿지 않는 자인지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겉으로는 그들 모두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가 누구인지 아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제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다가 알게 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모습에 대해서 실망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런 실수를 할지 몰랐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패할 것을 이미 모두 알고 계셨고, 미리 아시는 가운데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고린도전서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되신다고 언급되고 계십니다. 


또한 성경은 성령 하나님께서 지혜와 지식과 계시의 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이사야 11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우리는 이 구절에서 성령님에 대하여 설명하는 가운데, 지혜와 지식이라는 두 단어가 함께 등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영은 지혜와 명철의 영이며, 지식의 영입니다. 

프린트 2번 박스의 오른쪽 부분에서 우리는 특별히 삼위 하나님에 대한 구분을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이라든지, 주라는 단어로 언급된 구절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함께 로마서 11장 33절을 보시겠습니다.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너무나 깊어서 사람이 그것을 헤아리거나 가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작품인 창조물들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들을 통하여, 역사 속에 나타나고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조금 알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3. 지식과 지혜

이제 우리 함께 프린트의 세 번째 박스를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시고, 지혜에 있어서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지식에서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그분의 지혜와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식은 머리로 어떠한 정보를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그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바르게 분별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적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지식은 머리로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마음으로, 실제 삶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이론적이지만, 지혜는 실천적입니다. 지식은 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지혜는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지식은 마음이나 의지와 분리되어 있지만, 지혜는 마음과 의지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 모든 것을 아시는 완전한 지식은 결코 지식 그대로 남아 있지 않고, 지혜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낱낱이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단지 알고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의 성품으로는 모든 죄를 심판하시려는 완전한 계획을 세우셨고, 또 한 면으로 사랑의 성품으로는 구원하려는 완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연약함의 감정에 대해여 지식적으로 완전하게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우시고,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며 동정하시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목적 또한 단지 어떠한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단순히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말씀이나, 성경의 이야기들을 또 듣고, 또 배우는 이유는 지식적으로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우리가 이제 프린트의 세 번째 박스 아래 부분에 있는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모든 일들에 대해서 아신다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결말,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아신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칼빈주의 예정론, 또는 운명론에 빠지게 됩니다. 

예정론, 운명론이라는 것은 영원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결말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원에 있어서 예정론은, 구원을 받을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할 자가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택하셨다, 라는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받고 안 받고를 결정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8장 29-30절을 보시겠습니다. 

29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정하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미리 아신 자들,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될 자들을,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을지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을 자들이 예수님의 형상과 같이 되어서, 독생자 예수님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 첫 아들이 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4-6절을 보시겠습니다. 

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5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6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네, 이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바로 칼빈주의 구원 예정설의 근거로 사용되는 구절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4절을 잘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범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을 보면 택하시고 예정하신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셔서,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신 내용은 누가 아담 안에서 아담 밖으로 나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인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을 택하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내용은 누가 구원을 받을지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실 것을 예정하셔서,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1-12절도 보시겠습니다. 

11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12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내용은 우리가 그분의 아이로 입양되어,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 얻게 된 그러한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예정론과 칼빈주의자들이 기록하는 예정론은 다른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운명을 다 아시고, 미래의 시점에서는 그것이 이미 결정된 것이므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그 운명대로 갈 수밖에 없다, 라고 주장하는 운명론, 예정론을 믿게 되면 우리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실제로 칼빈주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복음 전도나 선교사역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전도를 열심히 해 봤자,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지옥가기로 되어 있고, 천국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전도 안해도 선택받았으니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정론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창세전에 무작위 랜덤으로 선출된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사람의 구원이 결정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보혈, 십자가, 믿음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적이라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간 관계로 함께 찾지는 못하지만, 사무엘상 23장에 나타난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미래를 알고 계셨고, 대답을 해주셨지만, 실제 역사는 하나님께서 미리 대답해 주신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일라에 숨었는데, 사울 왕이 찾으러 오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그일라로 내려오겠느냐고 하나님께 여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일라에 올 것이라도 대답하셨습니다. 다윗은 두려워서 하나님께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넘겨주겠느냐고 여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넘겨줄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에 의하면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사울 왕에게 넘겨지고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는 곧바로 그일라를 떠나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물음에 대하여 미래의 일들을 대답해 주셨지만, 그것은 변경이 불가능한 결정된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미 다 벌어지기로 결정되었던 일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그 무엇을 하더라도 이미 결정된 운명대로 가게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전생에 무엇을 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노예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잘못했기 때문이며, 이생에서는 그 업보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살고 있는 요인을, 오늘 나의 삶의 태도에서 찾지 않고, 나와 상관없는 그 무엇에 넘겨버리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자만, 사탄은 우리가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흐름을 역행하여, 도전하며 전진하기를 원하시지만, 사탄은 자신이 세워놓은 세상 체계와 문화에 순응하여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지하심, 미리 아심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지혜와 지식

이제 우리 함께 프린트의 마지막 박스를 살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총 7가지 요점으로 정리를 해 보았는데,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고, 간단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요점처럼, 우리는 성경에서 “알라”, “알지어다”, “이해하라”, “깨달으라”라고 명령하시는 많은 표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선하심을 맛보다 알지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알거니와”, “연구하라” 이러한 표현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에게 공유된 속성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요점처럼, 성경은 지식에 대해서 권장사항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필수사항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대언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여 망한다고 대언하였습니다. 지식이 불충분해서 망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 번째 요점처럼, 성경은 지혜가 빠진 단순한 지식에 대해서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빠진 지식은 사람을 우쭐대게 하고, 교만하게 만들며, 형제자매들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요점에서 우리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동 출신의 다윗은 어떻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사랑스러울 만큼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17세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은 어떻게 40세가 되어 이집트의 총독이 되었을 때, 지혜롭게 파라오 앞에서 행동하며,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요점처럼, 우리에게 가장 뛰어난 지식은 바로 우리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섯 번째 요점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것과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면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은 무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삶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주님과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삶입니다. 다만 일곱 번째 요점처럼,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 또한 지체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프린트에 함께 찾지 못한 많은 성경구절들이 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제가 나름대로 선별해서 적어놓은 것인데, 시간이 되실 때 한 구절씩 찾아보시고, 묵상해 보시면 큰 은혜가 되실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일하심”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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