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세부항목

노아가 만난 하나님(창 6:9)

2007.04.04.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5세)

제목 : 노아가 만난 하나님(창 6:9)
본문 : 창세기 6장 9절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6장 9절 한 구절입니다.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노아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노아
여러분은 성경에서 가장 의로운 세 사람을 뽑으라면 누구를 뽑으시겠습니까? 특별히 구약성경 가운데서 세 사람을 뽑으라면 누구를 뽑으시겠습니까?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사가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마 23:35, 눅 11:51).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친구였던 아브라함,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 예수님의 놀라운 예표가 된 요셉, 이스라엘을 국가로서 탄생시킨 모세, 불의 선지자 엘리야. 우리는 많은 의로운 믿음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대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이렇게 세 사람을 뽑으셨습니다.

에스겔 14장 13,14절 말씀인데,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3 사람의 아들아, 그 땅이 심히 범법하여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내 손을 그 위에 내밀고 그곳의 빵 지팡이를 부러뜨리며 기근을 그 위에 보내어 사람과 짐승을 그곳에서 끊으리라.
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그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자기 의로 자기 혼만 건지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근으로 이스라엘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그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자기 의로 다른 사람은 구할 수 없고, 오직 자기 혼만 건질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대명사로서 노아를 가장 먼저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인 창세기 6장 9절에서도 "노아는 의인이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인이라는 것은 로마서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히 무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아가 살던 그 당시에 타락하고 범죄한 모든 사람들과 비교하여 볼 때 의인이라는 것임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 노아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노아가 만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저는 세 가지로 요점을 잡아보았는데, 첫째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둘째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 셋째는 언약의 하나님, 이렇게 잡아보았습니다. 노아가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살펴봄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올바르게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그럼 첫 번째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에녹의 이야기로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아담의 세대들이라고 해서 누가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살고 죽었는지를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절에 에녹이 등장하면서는 조금 더 부연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 21-24절 말씀을 보시면
21 ¶ 에녹은 육십오 년을 살며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뒤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아들딸들을 낳았더라.
23 에녹의 전 생애는 삼백육십오 년이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

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에녹은 65년을 잘 살다가 갑자기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부터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므로 갑자기 땅에서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녹은 말 그대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휴거되었는데, 이에 관하여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시점에서 에녹에게 이 땅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계시해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서 14,15절에서는 이렇게 에녹이 선포했던 말씀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14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사람은 에녹도 이들에 관해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
15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또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또한 에녹이 낳은 아들 므두셀라의 이름은 "그가 죽으면 오리라"라는 뜻으로 에녹이 므두셀라를 표적으로 세워 그의 죽음과 함께 이 땅에 심판이 임할 것을 대언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년도를 한번 계산해 본다면 정말 므두셀라가 죽은 그 해에 홍수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정말 므두셀라가 죽은 그 해에 홍수가 일어났는지 숫자 계산을 해봤는데요, 잠시 같이 한번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5장 21절에 보시면 에녹이 65년을 살며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25절에 보면 므두셀라는 187년을 살면서 라멕을 낳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잘 보십시오. 26절에 보면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뒤 782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래서 라멕을 낳기 전까지 187년 더하기 782년을 하니 총 969년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맞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손가락을 찍어놓을 년도는 바로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은뒤 782년을 더 살았다는 점입니다.

자, 그리고 28절과 29절을 보시면 므두셀라의 아들인 라멕이 182년을 살고 노아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한 장 넘겨서 창세기 7장 11절에 보시면 "노아의 생애에서 육백째 해"에 홍수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멕이 태어나서 182년을 살고 노아가 600년을 살았으니 그 수를 더하면 782년입니다. 맞습니까? 그리고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은 뒤에 산 년도도 782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녹에게 보여주셨던 그대로 정확히 므두셀라의 죽음까지 그 세대의 사람들을 참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므두셀라가 태어난 바로 그 시점부터 에녹을 통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계속된 경고의 말씀을 주셨고, 또 므두셀라의 마지막 120년 동안은 의의 선포자인 노아를 통하여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므두셀라가 살았던 연수는 969년인데,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최고로 장수한 사람의 연수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있다고 해서 즉시로 벌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대언자 요나가 못마땅하고 분노하며 말했던 것처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고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큰 친절을 베푸사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는 하나님이신"것입니다(욘 4:2). 만약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범죄한 즉시로 벌을 주시는 분이었다면 우리 모두는 이 자리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통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처음으로 일생을 헌신할 때 주님의 오래 참으심에 감격하여 헌신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세상과 친구 되고 죄악을 물마시듯 행하고 하나님 없이 계속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를 지금까지 참아주시고 오히려 선하게 은혜로 대해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묵상할 때면 주님께 헌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런 나를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답답하고 고집 센 나를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너무나 분에 넘치는 은혜와 긍휼로 나를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오래 참으심에 힘입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긍휼로 대하신 만큼, 내가 그것을 발견한 만큼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 저 지체를 사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이 나의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이 나를 향하여 얼마나 큰사랑으로 오래 참으셨는지를 알려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를 오래 참으신 것에 감격한 만큼 그 은혜가 부어진 만큼 우리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긍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말씀 한 마디로 방주를 만드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만 하늘을 열고 직접 벼락같은 말씀으로 세상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여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의 모양과 길이와 재료와 창문의 위치를 세세하게 가르쳐주시고 120년 동안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를 통하여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번 성경의 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노아는 말 그대로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쾌락들을 사랑하며 이기적이고 사나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꾀를 부려서 남을 속여 빼앗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은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하며 융통성이 없고 앞뒤가 꽉 막힌 한 사람 노아가 온 가족과 함께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지나가면서 볼 수 있도록 우뚝 솟은 언덕에서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묻습니다.
"이게 뭡니까?", "방주입니다.", "방주요? 그럼 배 말입니까?", "네, 배라고도 할 수 있지요."
"아니 무슨 배를 언덕 위에 짓습니까? 이걸 여기서 다 만들고 강까지 옮길 작정이세요?"
"아니요, 이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판의 홍수를 일으키실 겁니다. 그럼 자동으로 배가 뜨겠지요?"
"이 사람 정신나갔구먼, 이거 짓는 모양을 보니 하루 이틀 걸릴 일도 아닌거 같은데 온 가족이 고생이구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를 심판하실 겁니다. 선생님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세요. 그리고 나중에라도 방주에 들어오고 싶거든 말씀만 하세요.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값없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아이고 됐네요 이 사람아, 정신차려."

시간이 흘러갑니다. 일 년, 이 년, 삼 년...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수십 년이 흐르도록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를 짓고 있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를 짓는다는 소식은 그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다가도 구경꾼들이 좀 모였다 싶으면 목소리를 높여서 외쳤을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온 땅을 뒤덮을 물이 하늘에서 쏟아질 것입니다! 온 땅이 물로 뒤덮일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방주로 들어오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배 값은 받지 않습니다.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값없이 들어오세요!"

그러면 방주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깔깔대며 노아를 조롱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이렇게 120년 간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만약 노아가 주님과 동행함 없이, 주님께로부터 받는 격려와 위로 없이 이 일을 감당했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노아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찾기 원하십니다. 비록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고 비웃고 깔깔대며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주님과의 교제를 누리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주님과 가까이 동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해나가기 원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일들을 섬기고 있다면 우리가 과연 주님과 가까이 동행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만 맡겨진 일들을 사무적으로 처리하고 있는지를 잘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과 동행함 없이 일들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짐이요, 고생이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만약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어떠한 일을 함께 하기 원하시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과 교제를 누리고 있다고 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주님과 동행하는 상태가 아닐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주님과 동행한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격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이었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동행하며 함께 일하기 원하고 계십니다.


** 언약의 하나님
첫 번째로 우리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두 번째로 우리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는 언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의미하는 언약의 하나님은 우리의 약한 믿음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 다시 한 번 노아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창세기 7장 5-1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5 노아가 주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에 따라 행하였더라.
6 땅 위에 물들의 홍수가 임할 때에 노아가 육백 세더라.
7 ¶ 노아가 홍수의 물들로 인하여 자기 아들들과 자기 아내와 자기와 함께한 자기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고
8 정결한 짐승과 정결하지 않은 짐승과 날짐승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 중에서
9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수컷과 암컷이 두 마리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10 이레가 지나서 땅 위에 홍수의 물들이 임하니라.


이제 방주는 완성되었고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짐승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날짐승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가축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의 기는 모든 것들의 그것들의 종류대로 종류마다 두 마리씩 노아에게 나아왔고, 노아는 그들을 방주 안에서 배치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짐승들이 각각 스스로 두 마리씩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너무나 웅장하고 멋진 장면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방금 읽은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짐승이 들어간 이후에 일주일을 더 기다려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신지 우리는 다시 한 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이 얼마나 완고하고 어리석은지 그 모든 광경을 목격하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제 방주의 문이 닫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후두룩 떨어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폭포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전에 한국에서 일주일 동안 소나기가 내린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낮은 지역의 마을들은 삼일 만에 다 잠겨버렸다고 합니다. 더더욱 노아의 때에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비가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집들이 떠내려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덕으로 산으로 오르고 어떤 이들은 방주로 달려옵니다.
"쾅쾅쾅", "이봐요! 방주 문 좀 열어주세요!! 가진 재산을 다 줄 테니 제발 문 한번만 열어주세요."
방주의 사방에서 사람들이 두드려댑니다. "제발 우리 아이만이라도 들여 보내주세요!"
사람들은 절규와 통곡으로 부르짖지만 이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끝나고 심판의 날이 그들에게 닥친 것입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을 굳게 하는 자는 갑자기 멸망을 당하며 또 구할 길이 없으리라"(잠 29:1)는 잠언 말씀과 같이 그들은 120년간의 책망에 목을 굳게 하고 갑작스런 멸망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천둥과 번개와 쏟아지는 폭우 가운데 방주가 기우뚱거리기 시작합니다. 물이 차올라서 방주를 물 위로 들어 올린 것입니다. 40일 밤낮으로 폭우가 쏟아졌고, 비가 그친 뒤에도 계속해서 방주는 물 위를 떠다녔습니다.
이제 창세기 8장 13-16절을 보시면
13 ¶ 제육백일년 첫째 달 곧 그 달 첫째 날에 물들이 땅에서 마르매 노아가 방주의 덮개를 치우고 보니, 보라, 지면이 말랐더라.
14 둘째 달 곧 그 달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15 ¶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너와 함께한 네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아가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홍수가 시작된 날이 노아의 생애에서 육백째 해 둘째 달 십 칠일이었으니, 노아는 약 1년간을 방주 안에서 지냈습니다.

이제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헌물을 드립니다. "하나님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자를 이렇게 보존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홍수에서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여러 가지 언약을 주시는데 오늘 저는 그 중에서 창세기 9장 11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와 더불어 내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내가 모든 육체를 홍수의 물들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앞으로 다시는 온 땅을 덮을 홍수의 심판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에서 가장 신실하시며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가장 믿을 만한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노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노아가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노아는 그 무시무시한 홍수의 심판을 온 몸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님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하나님 정말 심판하시는 거 아니죠?" 하면서 믿음이 연약함으로 인해 불안하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믿음 없음을 동정하시며 도와주시기 위하여 무지개라는 언약의 증표를 주십니다.
창세기 9장 12-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2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또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 사이에 대대로 영구히 맺는 언약의 증표가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노니 그것이 나와 땅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표가 되리라.
14 내가 구름을 가져다가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서 보이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또 모든 육체의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 사이에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들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시고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약속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므로 말씀만 하시면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일을 다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을 격려하시고 도와주시기 위하여 무지개를 증표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정말요?"하면서 좋아하더니 이제 매일 밤 아빠에게 그 약속을 확인합니다. "아빠 정말 저 자전거 사주실거죠? 정말이죠?" 아빠는 이미 말을 했고 정말 사줄 마음이 있지만 아들은 믿음이 연약합니다. 아빠는 새끼손가락을 치켜들고 미소를 지으면서 "자,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아들은 더욱 좋아합니다. 이제 아들은 매일매일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약속을 확인합니다. 아빠는 어느 날 자전거 대리점에서 자전거 사진이 들어가 있는 광고지를 얻어다가 아들에게 보여줍니다. "아빠가 이거 사줄거야." 이제 아들은 그 사진을 보면서 너무나 기뻐합니다. 더 이상 아빠에게 "정말이죠?" 확인하지도 않고, 손가락을 걸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사진을 보면서 정말 자전거를 받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이제야 아빠가 정말 자전거를 사줄 것이라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이미 아들에게 사주겠다고 말을 했으므로 더 이상 뭔가를 해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아빠를 믿는 믿음이 연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을 도와주려고 새끼손가락을 걸어주기도 하고 직접 자전거의 사진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이 아버지와 같이 자녀들의 믿음이 없음을 도와주십니다. 성경은 구약, 신약 모두 언약으로 가득 찬 책이며,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고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아들의 피를 언약의 피로써, 언약의 증표로써 제시하셨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녀들에게 또 한 가지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또 믿고 있지만 믿지 않는 것같이 살아갈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약함을 도와주시고자 주님이 오시는 때에 표적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 노아의 날
주님께서는 특별히 주님이 다시 오시는 표적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날들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8-4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로 들어간 날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41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42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43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이 뚫리지 않게 하였으리라.
44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


우리들은 어쩌면 노아의 날들에 있던 사람들과 같이 너무나 안락하고 평안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긴 언제 온다고?"하면서 지내던 사람들과 같이, 우리가 직접 말로는 "주님이 오긴 언제 오셔?"라고 말하진 않지만 때로 우리의 깨어있지 못한 삶은 그러한 말을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주님께서 오래 참으셨듯이 오늘날도 우리 주님은 오래 참고 계십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있을 때에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일하는 노아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오래 참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에 이르도록 이끌어줄 추수의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흐려지고 약해질 때에, 우리를 내치거나 무섭게 다루지 않으시고 너무나 은혜롭게 하나님의 여러 말씀들과 시대의 표적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의 믿음을 격려하시고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노아가 만났던 하나님, 오래 참으시며, 나와 동행하고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고, 약속하시고 믿음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우리들도, 노아의 날들과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더 많이 알아가고 더 친밀히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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