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세부항목

아이들을 부르시는 주님(마 18:1-6)

2006.03.01.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4세)
제목 : 아이들을 부르시는 주님
본문 : 마 18:1-6,10,14

오늘 함께 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르되, 하늘의 왕국에서는 누가 가장 크니이까? 하매
2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그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것이 그에게 더 나으리라.


또한 10절과 1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10 너희가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오늘은 아마도 제가 캐나다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기대가 되고 또 큰 복이 있었는데 이번에 하는 설교가 형제, 자매님들을 오랫동안 떠나기 전에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으로 은혜를 나눌까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3.1절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들을 죄로부터 해방시켜주신 주님에 대해 설교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또 요즘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영광이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말씀을 준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도 귀에도 마음에도 들어와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은 어떤 것일까, 모세가 간절히 보기를 사모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것일까, 바울이 세상의 쓰레기와 같이 되면서도 그러한 모든 고난이 가벼운 것은 그 영광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 영광이 어떠한 것일까 하는 것들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제 마음에 지난 5년 동안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작은 부담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리 다같이 마태복음 18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어떤 말씀을 나눌지 다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 기름 부어주시라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우리나라는 요즘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낳아서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라는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더 커졌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과 교육비의 부담 때문에 점점 아이들을 낳지 않는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주님께서는 우리교회를 넘치게 축복하셔서 시끌벅적하고 바글바글한 아이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하니 무엇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할지 참 막막했습니다. 설교원고도 새로 써보고 성경본문도 바꿔보고... 나름대로 끙끙대다가 우선 가볍게 우리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일학교의 주제가인 “갈보리 어린이”라는 찬송을 보면 3절 마지막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한가지 소원 주님의 사람되는 것 더 많이많이 자라나서 섬기고 싶어요.” 이제 6학년이 된 창원이가 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인데, 하루는 창원이가 학교를 다녀오더니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창원이 어머니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창원이가 대답하기를 “성경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학교에 원수 같은 친구를 사랑할 수가 없어요.”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우선 창원이가 찬송을 부를 때 그 가사가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에, 또 창원이가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작게나마 소원으로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또 그 문제로 나름대로 깊이 생각을 하고 고민을 했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로마서 5장 10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원수였을 때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하셨는지를 더 깊이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작년 여름, 가을 즈음에 아이들에게 카드 붐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올 때마다 카드를 한 뭉치씩 가져오곤 했습니다.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용과 괴물과 악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빼앗기도 하고 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좀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4학년에 올라간 재선이가 있습니다. 한번은 재선이의 어머니께서 재선이에게 사도행전 19장에 예수님을 믿은 에베소 사람들이 마술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내용을 가진 은 오만 개 어치나 되는 책들을 모두 불태운 장면을 보여주시면서 그 카드를 버려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선이는 그 당시 울면서 그 카드를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 재선이의 생일이 되었을 때 한 친구가 다시 그 카드를 한 뭉치 선물한 것입니다. 그 때 재선이는 조금 가지고 놀다가 스스로 그 카드를 버렸습니다. 재선이 어머니는 재선이에게 왜 좋아하는 그 카드를 버렸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재선이는 대답하기를 “카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아가잖아요.” 하였습니다.

재선이의 친구인 건주가 있습니다. 건주는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매일 성경을 한 장씩 읽고 있습니다.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하였는데, 마태복음 6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이 말씀을 읽은 건주는 정말 이 말씀이 진짜인지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건주에게는 한 친척형이 있는데 명절마다 그 형과 함께 노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형은 평소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먼 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건주는 은밀히 하나님께만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그 형과 만나서 놀게 해주세요.”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어느 날 건주가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할머니 댁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척형이 마침 그 집에 와있었던 것입니다. 명절도 아니었고 서로 시간을 맞춘 것도 아닌데 놀랍게도 멀리 사는 그 친척형이 와있었던 것입니다. 건주의 어머니는 건주가 그렇게 기도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건주는 너무나 기쁘게 “제가 엄마한테도 말 안하고 정말 은밀히 하나님께만 기도했는데 드러나게 응답해 주셨어요!”하면서 자랑하였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주영이가 있습니다. 주영이는 불교를 믿는 외할머니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매우 답답해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영이는 손에 돌멩이 하나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 내밀면서 “할머니, 할머니는 이런 돌한테 절을 한다는 말이에요?”하면서 끝까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800년대 놀라운 부흥의 통로가 되었던 설교자 디엘 무디는 자신의 설교 이후에 한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아이가 헌신초청에 응답하여 앞에 나온 것을 보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 한 사람 반의 인생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은 그 기도의 의미를 물었고, 디엘 무디는 대답하기를 “이 어른은 이미 자신의 인생을 많이 허비하여서 반밖에 남지 않은 인생이지만, 이 아이는 아직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온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매주보고 또 쉽게 지나치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우리가 짐작도 하지 못했던 깊고 진지한 생각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람이 되고자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한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 어떻게 주님의 사람이 될까하는 고민이 있고, 카드가 너무나 좋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단호하게 버리려는 결심이 있고,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은밀히 기도하여 응답 받는 간증이 있고, 불타는 복음의 열정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표현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이고 우습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과 교제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가장 큰 자인지를 논쟁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이들을 잘 양육해서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기뻐하시는 사람들로 세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실족시키고 길을 잃게 만드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실 정도로 주님은 우리 아이들을 앞길을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 오늘날의 우상, 교육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다니엘서에 예언된 것과 같이 지식이 증가한 시대입니다(단 12:4).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은 우상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바로 물질과 쾌락 그리고 교육입니다. 이 세상의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교육의 대열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모든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여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바로 사탄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 시스템에 정복당하여 휘둘리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에 한 초등학생이 자살하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학원을 조금만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육이라는 우상은 아이들을 바쁘고 지치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세상의 흐름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정 안에도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러한 교육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영어를 잘 못하고, 수학을 못하고, 과학을 못하면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것을 위해 돈을 쓰고 학원에도 보내지만, 자신의 자녀가 주님을 모르고 성경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혼내기도 하고 답답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것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교회의 초등부 아이들 중에 거의 대부분이 자기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한 달 동안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하거나 상식과 흥미를 위해 구입하는 책들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성경은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성경을 가져다 읽으라고 하는 것과 자기 소유의 성경,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기록된 내 성경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주님을 알아 가는 것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지 않습니까? 상식과 교양을 위하여 읽으라고 강요하는 책들은 너무나 많지만 성경을 읽으라고 말하는 소리는 너무나 작습니다.



**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오늘의 본문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주님은 어린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워놓고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바램일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 식어지리라”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심이 험악해졌다.”, “세상 살기 무서워졌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랑이 식어졌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대명사는 바로 부모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자기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지막 날들의 특징이 바로 사랑이 식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구원”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구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여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제가 지난 5년 간 아이들을 대하고 또 복음을 전하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복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 라는 사실은 아이들이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지옥이 있다는 것도 알뿐 아니라 무서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것인지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뭔가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아이 자신이 철저하게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이라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순수하고 열려있는 마음 속에도 복음이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나이를 먹는다고 자라나지도 않고, 몇 번의 성경공부로는 심어주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아들을 미워하거니와 그를 사랑하는 자는 어릴 때에 그를 징계하느니라.”(잠 13:24).
“바로잡는 것을 아이에게 금하지 말라. 네가 그를 회초리로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너는 그를 회초리로 때려서 그의 혼을 지옥에서 건질지니라”(잠 23:13,14).

사랑이 식어진 오늘날은 자기 아이를 때리지 않습니다. 제 때에 징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배우지 못합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욕심을 부리고, 미워하고, 권위를 거슬러 마음대로 행동하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얼마나 크게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죄인인지 인식할 수조차 없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철저하게 맞으면서 배운 아이들은 거짓말을 지적할 때 자신이 큰 죄인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다만 말로만 경고를 받고 타이르고 구슬리는 방식으로 자라난 아이들은 그런 것을 별로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가 예수님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어떤 아이가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알맞은 때에, 아이들의 혼을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죄가 무엇인지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뜨거운 사랑으로 아이들을 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초리가 아이들을 죽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지옥에서 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회초리를 아낀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미워하는 것이며 멸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현재 잘못된 것들을 고치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더 멀리 본다면 그를 지옥에서 건지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제 때에, 알맞은 때에 아이들의 잘못을 알려주고 징계하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구주 예수님을 찾도록 인도해 줄 것입니다.



** 아이들의 미래
우리 아이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아이들이 하늘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구원만 달랑 받고 자기 정욕대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드려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영원한 영광으로 기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목적이며 소망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이끌어 줄 수 있습니까?

저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저의 말을 듣고 배우기보다 저의 행동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는 이론을 따로 배우고, 실제로는 어느 선까지만 적당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짓과 표정과 어조와 행동을 관찰하며 실제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흡수하고 그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참되게 이끌 수가 없습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어른들은 눈물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른이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어머니께서 예배당에서 통성기도를 하시면서 아주 큰소리로 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보았는데, 그 때 저는 “엄마 왜 울어, 엄마 왜 울어, 울지마.” 하면서 마구 흔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씩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 잘 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들! 아이들 앞에서 성경을 펼쳐놓고 많이 우십시오.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이야기를 해주면서 많이 우십시오. 또 아이들에게 자기 전에 기도해주면서 많이 우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진지하게 믿고 따르는지 삶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주일에 한번 습관적으로 만나는 악세사리 같은 분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나를 인도하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기도요청
원래 저는 다니엘, 사무엘 그리고 사무엘의 자녀들, 소년 다윗, 디모데 이런 성경 인물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할 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또 아이들이 유치한 것을 가지고 웃고 좋아할 때 어떻게 같이 웃어줘야 하는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면서 쉽게 업신여기고 간과하는 부분 등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수요기도회입니다. 저는 기도요청을 하러 올라왔습니다.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닌 한 어린 형제가 그 동안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섬기면서 힘들고 지치고 실패하고 부끄러웠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대하고 섬기면서 주님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이없어하고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하다가도 이 아이들보다 더 심한 나를 오래 참아주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신 주님의 은혜 앞에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도저히 섬길 수 없는 어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도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의지하여 아이들에게 오직 주님의 사랑과 진리만을 전달하고자 했을 때 나의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나의 마음상태와 관계없이 언제라도 아이들을 기쁘게 대해야하는 섬김의 위치는 때로 부담스럽고 힘든 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넘치는 축복과 은혜를 누리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잠시 다른 위치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주님이 다시 부르시면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주님을 알아 가는 이 귀한 자리를 사모하며 돌아오기 원합니다. 아이들에게 더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여러 가지 핑계로 해주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많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교회를 축복하셔서 많은 아이들을 주셨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보며 섬길 지체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섬김의 자리를 사모하여 헌신하며 감당할 지체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또 아이들을 이끌어주며 함께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선생님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9장 13,14절을 다 같이 읽고 마치겠습니다.
13 ¶ 그때에 사람들이 그분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실 것을 바라며 어린아이들을 그분께 데려오매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거늘
14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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