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세부항목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갈 5:16-26)

2007.10.31.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5세)

제목 :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갈 5:16-26)
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갈라디아서 5장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19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21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말하노니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께서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26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기쁨"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기쁨이라는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기쁨이 없고 걱정과 염려와 실망뿐이라면 우리는 살아갈 아무런 의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작은 기쁨이라도 있다면 그 기쁨으로 인하여 다른 많은 문제들을 쉽게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육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생활할 때 기쁨이라는 열매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러 종류의 기쁨들 사이에는 수준의 차이가 있습니다. 장난감을 선물 받고 기뻐하는 아이의 기쁨과 기뻐하는 자녀를 보며 기뻐하는 부모의 기쁨은 분명 차원이 다릅니다. 또 한 가지 기쁨의 특징이 있다면 기쁨의 차원이 높이 올라갈수록 눈물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을 하는데 3:0으로 이긴 팀은 그저 웃으며 기뻐할지 모르지만, 3:0으로 지던 상황에서 역전의 드라마를 일구어 우승을 이룬 팀은 눈물로 기뻐할 것입니다. 마라톤을 하는데 어릴 때부터 건강해서 금메달을 딴 선수와 그의 가족은 웃으며 기뻐할지 모르지만, 어려운 사고나 시련을 겪은 뒤에 그 모든 것을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와 그의 가족은 눈물로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본다면 우리는 그 기쁨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상의, 가장 높은 차원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열매로써 나타나는 기쁨을 맛본다면 그것은 잔잔한 감동에서 시작되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주님께 기쁨의 찬송을 외치게 할 것입니다.

다함께 오늘의 본문 1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여기서 육신에서 비롯된 기쁨과 성령 안에서 나온 기쁨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의 기쁨은 자신의 욕심이 이루어진 것에 근거하지만, 성령의 기쁨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에 근거합니다. 육신의 기쁨은 자신의 행함에 근거하지만, 성령의 기쁨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근거합니다. 육신의 기쁨은 우리가 높아질 때 찾아오지만, 성령의 기쁨은 우리가 낮아질 때 넘쳐납니다. 육신의 기쁨은 일시적이고 환경에 따라 급변하지만, 성령의 기쁨은 우리가 성령 안에 있는 한 계속됩니다.

오늘 우리가 원하는 기쁨은 나의 상태에 근거하거나, 환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위치한 최상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쁨을 가질 때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넘어지고 실패할지라도 기뻐할 수 있고, 환경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기쁨이 성령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설교의 구성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보았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한 기쁨이고, 두 번째는 고난으로 인한 기쁨이고, 세 번째는 형제 자매들로 인한 기쁨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 두 번째 고난, 세 번째 교회입니다.



** 1.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한 기쁨
첫 번째로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한 기쁨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함께 마태복음 10장 29절을 보시겠습니다. 29절부터 31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9 참새 두 마리가 일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 중의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31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여기에 일 앗사리온에 팔리고 있는 두 마리의 참새가 있습니다. 한 마리씩은 팔지도 않고 두 마리 묶어서 일 앗사리온입니다. 일 앗사리온은 16분의 1 데나리온이고, 1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여 하루에 16 앗사리온을 번 일꾼은 그 중 일 앗사리온을 주고 참새 두 마리를 살 수 있습니다. 하루 품삯으로 모두 참새를 산다면 모두 32마리의 참새를 살 수가 있습니다.

참새를 사고 파는 사람들은 아무도 참새를 긍휼히 여기거나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흔해빠지고 어디를 가든 널려있는 참새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치킨을 먹을 때 닭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이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참새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금요일 집에서 나오면서 참새가 떨어져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참새를 보면서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복음서를 주셨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렇게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지만 서로 비교하면서 볼 때 우리는 더욱 깊이 있고 또 흥미로운 말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6절을 한번 같이 보시겠습니다. 6절과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6 참새 다섯 마리가 이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들 중의 하나도 잊혀지지 아니하느니라.
7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이제 날씨가 점점 쌀쌀해 지고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붕어빵입니다. 캐나다에서 붕어빵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다니는 서울침례신학교 건물 앞에도 붕어빵 아저씨가 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붕어빵을 살 때 어떤 곳은 세 마리 천원, 그리고 일곱 마리 2천원에 파는 곳이 있습니다. 2천원이면 여섯 마리여야 하는데 한 마리는 서비스로, 덤으로 주기도 합니다.

오늘 여기 참새도 똑같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참새 두 마리에 일 앗사리온이라고 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다섯 마리에 이 앗사리온이라고 했습니다. 두 마리가 일 앗사리온이면 네 마리가 이 앗사리온이어야 하는데 여기에 한 마리가 덤으로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다섯 번째 참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불쌍히 여겨주지 않는 이 참새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나마 앞의 네 마리는 값이 치러진, 가치가 인정된 행복한 참새들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다섯 번째, 아무런 값도 치러지지 않고 무가치하게 여겨진, 모두에게 잊혀지고 계산되어지지 않은, 서비스요 덤으로 팔려간 이 마지막 참새.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들 중의 하나도 잊혀지지 아니하느니라."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때로는 이 다섯 번째 참새와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고, 기억해 주지 않고, 바라봐 주지 않고, 불러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가슴을 파고드는 외로움 속에 슬퍼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들 중의 하나도 잊혀지지 아니하느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여러분 오늘 아침 머리를 감으시면서 몇 개의 머리털이 빠졌는지 세어보신 분 혹시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큰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시는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5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16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사 49:15,16).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눈에 보잘것없이 여겨지고 다섯 번째 참새처럼 사랑 받지 못한 것 같은 우리를 손바닥에 못 자국으로 새기시고 절대 잊지 않으시며 여전히 우리를 광대하고 세심한 손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또한 슬퍼하지 말라. 주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오늘 우리의 기쁨은 이러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돌보심을 근거로 합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할지라도, 우리가 좀 못나고 모자랄지라도, 여전히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고 동행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며 원동력입니다.


** 2. 고난으로 인한 기쁨
이제 두 번째로 고난을 통한 기쁨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한 기쁨이며, 두 번째는 고난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를 향해 가져야할 목표는 자녀의 행복이 아닌, 자녀의 성숙이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목표로 삼을 때, 자녀는 나약해지고, 버릇이 없어지며, 책임감도 없어지기가 쉽습니다. 자녀의 행복을 목표로 삼은 부모는 자녀에게 닥치는 모든 어려움을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며, 모든 필요한 것을 착착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자녀의 성숙을 목표로 삼은 부모는 자녀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잘 조절하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잠시 거두기도 합니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며 세심하게 돌보고 계신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이 우리의 성숙을 목표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축복과 행복이지만, 그러한 축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성숙의 그릇을 먼저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재벌가인 아버지라고 해서 무턱대고 중학생인 아들에게 아파트나 자동차를 선물할 수 없듯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도 무턱대고 우리에게 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기 원하고 축복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때때로 어떠한 환경들은 우리를 속이는 마귀의 역사일 수 있는데, 이러할 때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어려운 환경들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참새도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도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난이 닥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러한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릇을 넓히시고 더 큰 축복을 담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기쁨은 우리에게 닥친 상황과 환경에 근거하지 않고, 그러한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근거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할 때 주님은 좋고 평탄한 환경들로 자신의 선하심을 보여주시지만, 우리가 조금씩 주님을 따르게 될 때 주님은 우리가 따라올 수 있는 만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인내하시는 가운데, 자상하게 우리를 성숙의 길로 이끄십니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운 환경은 다 주님의 사랑의 돌보심입니다.

다 같이 히브리서 12장을 보시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부터 11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5 또한 자녀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너희가 잊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친히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하셨느니라.
7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대우하듯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가 무슨 아들이냐?
8 모든 사람이 징계를 받으므로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가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
9 또한 우리에게 있던 우리 육체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로잡아도 우리가 그들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우리가 더욱 복종하고 이로써 살아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10 진실로 그들은 며칠 동안 자기들이 기뻐하는 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그분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시나니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이제 어떤 징계도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아니하고 슬프게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

참새를 돌보시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더욱 귀하게 보시며 우리를 섬세하게 돌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자녀로서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환경은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점들을 사랑으로 바로잡으시는 주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혼내고 벌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버지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로서 주어지는 고난과 어려움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생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받는 자녀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고 우리는 이러한 징계를 통하여 단련되어서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베드로전서 4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같은 시련에 관하여는 마치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가 넘치는 기쁨으로 또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느니라. 그분께서 그들 편에서는 비방을 받으시나 너희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우리의 삶에 불같은 시련이 닥칠 때, 우리는 자주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모든 어려운 환경은 우리를 단련하려고 주신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련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더욱 성숙한 자녀로 만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운 환경이 올 때 우리는 육신을 따르지 말고 성령님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닥친 징계와 시련의 목적입니다. 주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를 괴롭히시려는 악한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련 가운데 주님께 철저히 순종할 때에 우리 마음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영광의 기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한 장 넘겨서 베드로전서 5장 6절과 7절을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하나님의 강한 손이 우리를 억누를 때, 불같은 시련이 닥치고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억누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저항하여 벗어 던지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며 주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어려운 환경이 올 때 하나님이 나를 정말 돌보시는가 염려하지 말고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한 손으로 누르고 계신 것은 그러한 고난을 통해서만 정금 같은 우리의 믿음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작품을 가장 주의하여 살피는 때는 도자기가 불 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입니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불 속에서 꺼낼 때만이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가 있기 떄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불같은 시련을 통과하고 있다면 그 시간은 내 인생의 그 어떤 시간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주시하여 바라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 주여, 그러나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오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 64:8)

우리에게 닥친 어려운 환경을 보지말고 하나님의 강한 손을 보아야 합니다. 환경을 볼 때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다섯 번째 참새마저 잊지 않으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숙이라는 그릇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가 담을 수 있는 기쁨의 한계가 넓어질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이번에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오신 장 형제님께서는 위암 선고를 받고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하나님 그래도 내가 교회도 다니고 나름대로 주님 믿는다고 했는데 왜 복은 안주시고 이런 병을 주셨습니까, 하면서 원망이 들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서 감사하다고. 오히려 나 같은 사람과는 멀리 계실 것 같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손을 나를 만지고 계시다고 느껴져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하나님께서 몇 번에 걸쳐 신호를 주셨는데 내가 그 순간만 슬쩍슬쩍 넘어갔었다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 사랑하셔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내 인생에 개입해 주셨다고. 사랑의 하나님,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셨습니다.



** 3. 형제 자매들로 인한 기쁨
이제 마지막으로 형제 자매들로 인한 기쁨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한 기쁨, 두 번째는 고난으로 인한 기쁨, 이제 세 번째 형제 자매들로 인한 기쁨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베드로전서 5장 9절을 보시겠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위에 8절에 나오는 마귀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시므로 우리 곁에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을 함께 하며 주님을 따를 수 있는 형제들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힘이 없고 위로가 필요할 때 눈을 돌려 옆의 형제 자매들을 보십시오. 우리 형제들이 나와 동일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사모하며 함께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오해와 비방과 모든 시련 속에서 함께 주님을 소망하며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들 곧 나의 기쁨이요 왕관인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굳게 서라."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과 20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관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바로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 받은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형제의 고난이 오늘 나의 고난이 되고, 한 형제의 기쁨이 오늘 나의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홀로 믿음의 길을 가야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외롭고 쓸쓸할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라고 우리를 이렇게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어렵고 복잡할 때에도 나와 동일하게 복잡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여전히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을 생각할 때 많은 위로가 되고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지체들과 한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주님께 순종하고자 이렇게 달려가는 형제 자매들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기초합니다. 완전 버려지고 계산되지 않은 것 같은 다섯 번째 참새조차도 잊지 않으시며 모두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귀히 여기시며 섬세한 손길로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질 때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생각하며 기쁨의 감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나를 여전히 잊지 아니하시고 돌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쁨은 우리의 승리나, 우리의 성공에 있지 않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근거합니다.

또한 우리의 기쁨은 고난에 기초합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대우하시는 증거입니다. 불같은 시련은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성숙시키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돌보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강한 손 아래서 겸손히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걸음씩 주님을 따라가며 성숙할 때마다 우리의 그릇은 넓어지고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을 담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우리는 환경을 보며 낙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실 작품을 기대하며 다만 순종하는 가운데 기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쁨은 우리 옆에 형제 자매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각자 모습도 다르고 생활도 다르지만 모두가 주님을 따르고자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 형제가 주님께 전진하는 것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됩니다. 한 형제의 일어섬과 돌이킴이 우리에게는 큰 감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를 감상하며 기뻐하고 서로 격려하며 더욱 뜨겁게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귀한 형제 자매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영원히 멸망 가운데 슬퍼할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귀한 기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으로 동행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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