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세부항목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의 마음(갈 5:16-26)

2007.08.29.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5세)

제목 :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의 마음(갈 5:16-26)
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갈라디아서 5장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19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21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말하노니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께서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26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온 세상의 외침 - 사랑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령 안에서 걷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탱크와 같은 성령 안에서 걸을 때만이 안전할 수 있고, 가이드와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만이 율법의 지배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로 언급되는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아홉 가지로 언급된 성령의 열매가 모두 중요하지만 특별히 첫 번째로 언급된 이 사랑이라는 주제는 너무나 크고 중요합니다. 이 사랑의 열매에 대하여는 앞으로 한두 번 정도 더 나눠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이 몰랐던 뭔가 심오하고 난해한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일반적으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마음에 "맞아 사랑해야지"하는 머리에서부터 비롯된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우러나는 주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불러일으켜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캐나다에 있을 때 석기시대라는 삼겹살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웨이터 일을 해보니까 좋은 점이 가끔 까다로운 손님을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정신적인 노동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일하는 내내 서있어야 하고 계속 음식을 가져다주어야 하기 때문에 다리는 좀 피곤하지만, 일하면서 때로는 설교구상도 할 수 있고, 때로는 장래에 대한 계획도 세울 수 있는 아주 좋은 일이었습니다. 또한 손님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도 있고 일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 식당에서는 한국 유행가를 계속 틀어놓았는데, 평소에 유행가를 듣지 않던 저에게는 또 다른 경험이 되었습니다. 유행가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담고 있는 노래인데, 그 노래의 가사들을 가만히 들어보니 대부분의 노래가 바로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신나고 경쾌한 노래들도 물론 있었지만 대부분의 노래들이 "충족되지 않는 사랑", "과거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현재의 상처받은 마음", "잃어버린 마음에서 비롯된 공허함과 허전함"을 주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노래들은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손님들을 대해보니 그들 모두가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무엇을 주문하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줄 때 손님들이 아주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골손님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해주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기억해주고 그에 맞춰서 서비스를 해주면 사람들이 아주 즐거워합니다. 그리도 팁도 더 많이 줍니다. 다른 자리에 음식을 전해주고 지나가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을 하고 가져다주면 자신들이 미리 말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을 딱 가져다주는 서비스에 손님들이 감동을 합니다.

이 세상은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우리들도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밴쿠버에서나 한국에서나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우리들의 굶주린 마음을 만족케 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만족하지 못하고 상처만 주고받습니다.



** 사랑 받기 위해 창조된 사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제 핸드폰 벨소리가 이 노래로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손수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으로 모든 것을 조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산과 바다에서부터 시작하여 작은 한 송이 꽃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누리고 즐기며 안식할 수 있는 장엄하고도 섬세한 모든 환경을 설계하시고 제작하셨습니다.
그 뒤에 사람을 만드시되 하나님 자신의 형상과 같은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요구하고 짐을 지우기 위해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홀로 만족하시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주고 또 주기 위하여 사람이란 존재를 자신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이라는 존재는 질그릇과 같아서 상처받기 쉽고 깨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람에게는 곰이나 늑대 같은 단단한 가죽이나 따듯한 털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독수리와 같이 높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도 없고, 독수리의 눈처럼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거나 땅 위의 작은 토끼나 쥐가 움직이는 것까지도 포착할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올빼미나 부엉이같이 밤에 볼 수 있는 눈도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낙타와 같이 갈증을 견딜만한 물혹도 없고, 카멜레온과 같이 자기를 숨길 수 있는 보호색도 없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모두 너무나 연약해서 쉽게 상처받고 깨지는 연약한 그릇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동물들에게 제각각 뛰어난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서 왜 사람에게는 그러한 능력을 종합적으로 주시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이란 존재를 이토록 약하게,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던 것입니까?

여러분 혹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라는 작가가 쓴 소설입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출생의 문학가인데 열심히 문학 활동을 하던 중 죽음에 대한 공포와 인생에 대한 공허함을 느끼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톨스토이란 사람이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삶의 공허함을 느낀 한 문학가가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이윽고 명작 중의 명작이라 불리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은 무엇으로 산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도 예전에 과연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아주 놀랍게도 이 작가는 여러 단편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돈이 없고 몸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사랑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존파였는지 막가파였는지 모르겠지만 극악무도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그 사람들이 기자들 앞에서 외친 말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사회가 우릴 버렸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다는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잔인한 사람이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과 같지 못하고 일그러진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사랑으로 온전케 되지 못한 면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격에 문제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많이 사랑 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고, 누군가 성격이 좋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잘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나마 사랑을 좀 더 받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자
오늘 우리는 성령의 열매 중 사랑이라는 주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열매라는 것은 생명의 활동을 통하여 안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모양을 만들어 달아놓는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무리 화려하고 눈부시다 할지라도 그것은 생명의 활동을 통하여 나온 열매가 아니므로 모두 가짜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은 아무리 보잘것없고 작을지라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하여 나온 열매여야 합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이 사랑을 모조해서 달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열심을 따라 사랑을 하고자 할 때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망치고 다른 형제를 망치며 영혼들을 망치게 될 뿐입니다.

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누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까? 긍휼을 받아본 사람이 그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결심이 부족하고 성경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한없이 넘쳐흘러서 우리를 주체할 수 없도록 전율시키고 우리의 모든 인생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도록 이끄시는 그 사랑의 권능을 아직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다른 이에게 물을 줄 수 없고, 굶주린 사람이 다른 이에게 음식을 양보할 수 없듯이 우리가 아직 사랑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나오려면 우리 안에 먼저 사랑이 가득가득 넘쳐흘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서 그러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굶주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그 사랑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찬송가 기억하십니까?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볼 땐 나는 만족하였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굶주린 가운데 서로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살아갑니다. 관심 받고 싶고, 칭찬 듣고 싶고, 대우 받고 싶고, 존중 받고 싶어서 자기를 으스대며 능력을 과시하며 자기를 개발시키고 피곤하게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갑니다. 너무 과시하면 또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적당히 과시하고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자기를 낮추는 아주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피곤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서로가 사랑에 굶주린 존재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만족시킬 수 없고 피곤하게만 만들뿐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들을 완전히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랑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러한 사랑을 여전히 사람들 가운데서 찾는 한 우리에게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눈을 돌려야 합니다.

제가 오늘 함께 나누기 원하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사랑에 굶주려 있는 우리의 마음에 만족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찾고 원하는 사랑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사랑에 굶주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습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계산하고 판단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 같으면서도 깊은 속에서는 나의 영광과 칭찬과 유익을 계산하지는 않았습니까? 나의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부모님과 형제들과 친구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무관심하게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내뱉지는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힘들어하는지는 개의치 않으면서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만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까?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전혀 묻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없는 긍휼과 사랑으로 대해주셨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 매순간순간마다 마음으로, 눈빛으로, 입술로 짓는 모든 더럽고 추악한 죄악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 간증
저는 외아들로 태어나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음에도 스스로 외로움을 많이 탔습니다. 성격은 뭐든 내 생각에 옳은 대로 해야 하고 고집도 셌기 때문에 어릴 때는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주로 동네에서 내 말을 잘 따라주는 동생들과 어울리며 골목대장 역할을 했습니다. 해가 지면 다들 집에서 형제들과 노는데 저는 혼자서 집에 앉아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렸습니다. 엄마에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로움을 많이 탔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친구를 사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반에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들은 저마다 공부 잘하는 애들끼리 어울리고, 축구 좋아하는 애들끼리 어울리고, 만화 그리는 애들끼리 어울리고, 컴퓨터 게임하는 애들끼리 어울렸습니다. 저는 담배피고 싸움하는 애들을 제외하곤 가능한 모든 아이들과 다 어울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연필도 많이 가지고 다니면서 빌려주고 어떤 분야든 두각을 나타내야만 아이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고 도움 요청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그 나이 때 그런 계산을 다 해서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볼 때 저의 마음에는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들이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교회에서도 저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설교도 잘하고 뭔가 두각을 나타내야만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열심을 냈습니다. 물론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도 있었지만 육신의 여러 가지 계산이 섞여있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칭찬을 듣고 격려를 들을 땐 무엇보다 기뻤고 마음에 만족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신실한 형제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맡기면 믿음직하게 해내는 형제, 똘똘하고 지혜로운 형제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제 작년 공익근무를 하면서 저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이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시청에서는 공무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시간에는 집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날이 없었습니다. 주일학교 책임자에, 청년부 회장에, 교회 홈페이지와 녹음 담당을 하고, 수요일엔 격주마다 설교를 하고, 토요일엔 교회 청소와 주보 만들기까지 하면서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에 비협조적인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판단하고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은사가 많은 형제니 훌륭한 형제니 하는 칭찬도 더 이상 전혀 기쁘지 않고 오히려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아니 주님 이거 너무한거 아닙니까?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됩니까? 사람들 칭찬 다 필요 없습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다들 일 시킬 때만 나 부르고 아주 짜증납니다. 내가 어떻게 지내고 뭘 힘들어하는지 아무 관심도 없다가 일 시킬 때만 전화하고 내가 무슨 일하는 머신입니까? 내가 만약에 아무 능력도 없고 일도 못하면 아예 신경도 안 쓸거면서 일 시키려고 전화해서 괜히 미안하니까 안부 한마디 묻는거 아주 그냥 짜증납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얻으려고 열심히 달려온 그 길의 결과는 제가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시청에서 막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차마 교회 안에서는 최소한 주일학교 아이들에게조차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에 있는 힘껏 꽉꽉 누르고 지냈지만 시청에서는 함부로 행동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불합리하면 직원들하고도 싸우고 계장님한테도 대들었습니다. 마치 건들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였습니다. 마음속에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마음과 외로움이 죄책감과 뒤엉켜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인생이 허무해지고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기 위해 열심을 내고 모든 희생을 감수했는데 내게 돌아오는 것은 더 많은 일들과 책임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습니다. 왕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고 모든 의욕은 상실되었습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슬픔과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나도 원래 이기적인 사람인데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보여주겠다고, 다른 사람 도움도 필요 없고 다시는 나도 누구든 안도울거라고, 내가 얼마나 외로움을 잘 참고 혼자 잘 사는지 보여주겠다고 내가 모두를 왕따 시키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해주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셨습니다. 생활 중에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분의 손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도록 인도하시며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들이 그 전부터 진행되던 어떤 일들과 만나면서 퍼즐과 같이 맞춰지고 모든 어려움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해결되는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손길 앞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모든 인생과 내 주변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들려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망나니같이 살아왔는데 하나님께서는 더욱 부드럽고 따듯한 손길로 저를 품어주셨습니다.

저는 다시 마음을 강하게 먹고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시는데요? 왜 못살게 굴다가 잘해주는데요? 이제 와서 잘해주면 뭐 바뀌나요?" 따지면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더 이상 상처받기도 싫고 실망하기도 싫어서 이를 악물고 굳게 닫아버린 저의 마음에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왜 이런 나를 사랑하냐고요! 나 좀 내버려 두세요!"하고 외치던 저의 마음은 이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못난 놈까지도 버리지 않고 여전히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 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성실하려고 사랑받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날 사랑하신다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기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나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까지도 그대로 사랑하신거라고. 하나님의 사랑엔 조건이나 제한이 없다고.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시작하신 사랑이라고. 나는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이 이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사랑받고 안식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나처럼 사랑받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군가의 모가 나고 잘못된 행동 뒤에는 사랑의 굶주림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증에 걸려있습니다. 세상의 노래와 영화와 유행을 따라가며 허기진 마음을 채워보고자 치열하게 달려가지만 결국 얻는 것은 더 큰 수고와 공허함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많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높고 깊어서 우리가 평생을 마시고 누린다 할지라도 결코 고갈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로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충분히 누릴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그분 자신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알려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며 우리가 더욱 주님께 이끌리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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